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전남친 토스트’라는 게 한동안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였다. 무슨 현대소설 제목 같은 이 단어에 얽힌 사연인즉, 전남친은 잊었지만 전남친이 만들어준 토스트는 잊지 못한 여성이 한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시작된 얘기다. 전남친에는 아무 사심이 없었으나 전남친의 토스트에는 사심 가득했던 글쓴이는 전남친에게 메시지를 보내 레시피를 물어봤고 이를 인터넷에 공유했다. 그 후 인터넷에서는 “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전남친한테 연락해서 물어볼 정도냐”며 이 레시피가 화제가 됐다.
열흘 전, 신랑께서는 갑작스럽게 회사로부터 휴가를 하달받으셨다. 그 휴가는 무려 내일부터다.
야호~^^너무 좋다! 열흘 전에 휴가 쓰라고 명령하다니 부부끼리 휴가 맞추기도 어렵고 비행기표도 훨씬 비싸게 끊어야 되다니 진짜 짱이다^^! 최고얌^^!
다행히 허프포스트는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인 만큼 휴가를 비교적 마음껏 쓸 수가 있어서, 다음 주 며칠 정도는 휴가를 맞출 수 있었다. (워라밸 면에서는 한국 최고지. 현재 비디오 에디터 채용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어쨌든 다음주까지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보내게 생긴 신랑은 갑자기 경상도 시댁에 가 버렸다. “당신도 전에 혼자 친정 하루 다녀온다더니 사흘 동안 안 왔잖아. 그때 내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는지 느껴봐.”라는 문구를 남긴 채…
이런 사연으로 2박 3일간 혼자가 됐고, 오랜만에 혼자 저녁을 먹게 됐다. 그 와중에 문득 집에 크림치즈와 잼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 동네 빵집에서 파는 식빵은 그리 맛이 좋지. 저녁 메뉴는 전남친 토스트로 정했다.
남편 없는 늦은 저녁, 전남친 토스트를 그리 맛있게 다 먹다 보니 내가 가장 사랑한 전남친이 생각났다.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완벽한 연애란 없다는 걸 알려준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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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친 토스트는 대충 이런 비주얼이고, 그러니까 내 전남친은.. 내가 첫 사회생활로 모 기업 마케팅부 인턴을 할 때 만났다. 지금이야 뛰어난 글솜씨를 자랑하는 미인 에디터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 당시에는 경영학부 3학년이 끝나도록 회계정보원리도 이해 못하는 멍청이 휴학생이었다. 회계는 안 했지만 첫 사회생활은 고달팠다. 그야말로 마미ㅅ 아니 매드클라운의 노래 ‘커피카피아가씨’ 같았다. 화장으로 얼굴을 덮고 상냥하게 사무실의 꽃이 되는 하루하루.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지”, “너가 예쁘게 하고 다녀야 우리도 회사 다닐 맛 나지” 같은 말에도 그저 웃으며 ‘넵ㅎ’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도 너무 힘들었다. 마케팅은 내 상상 밖의 일이었다. 마케팅 한다고 하면 엄청 멋진 커리어우먼 현대여성인거같고 창의력 오지는 사람인 것 같고 막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는데 현실의 마케팅부에서는 하루종일 치마입고 이쁘게 앉아서 웃으며 엑셀만 두들겼다. 이중으로 고통받는 나날이었다.
전남친은 그렇게 힘들 때 마법처럼 뿅 하고 나타났다. 처음에는 얼굴이 너무 내 스타일이라서 만났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멋진 사람이었다.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길 바란다는 그의 응원은 내게 용기를 줬고, 그 용기는 마케팅을 용감하게 때려치고 에디터가 될 수 있게끔 나를 이끌었다. 내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는, 내 인생을 구하러 온 나의 구원자였다.
그러나 완벽한 연애는 없었다. 그는 바빴다. ‘나쁜 남자‘보다 연인을 더 마음고생 시킨다는 ‘바쁜 남자’였다. 새벽 1, 2시에 퇴근하는 날도 잦았고 주말에도 종종 갑자기 회사에 불려갔다. 연애 초반에는 아무리 바빠도 30분이라도 얼굴 보려고 밤 늦게라도 달려왔던 그였으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은 줄어들었다. 내 인스타그램에는 갑자기 이런 감성글이 많이 뜨기 시작했다.
ⓒCYWORLD
여자가 이별을 고하는 8가지 상황…★
3. 이해하려 했어. 매번 나는 이해했어. 그런데 그거 알아? 이해가 계속되니까… 사랑이 없어지더라… #사랑 #감성글 #글귀 #좋은글 #선팔하면맞팔
ⓒcyworld
이딴 싸이월드시절에나 먹혔을 법한 감성글귀를 보면서 오열하는 밤이 늘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 소프트웨어 개발자같은 남자를 이해해야 할까? 대체 한국은 왜 52시간 근무제가 아니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OECD 평균보다 1년에 33일을 더 일하는 민족... 흑흑...
그런 체제 전복적이고 불온한 생각을 하며 눈물에 얼굴을 묻곤 했다. 결국 우리는 그런 문제를 이기지 못했고, 그가 그토록 열심히 일해서 벌어온 돈으로 결혼을 했다.
어차피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면 집에는 들어와야 하니까 바쁜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벽 1시에 끝나든 2시에 끝나든 아침에 눈 뜨면 내 옆에 있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 이건 우리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혼을 하자마자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돼 현남편(=전남친)의 퇴근도 조금 빨라졌다. 우리는 연애 때보다 덜 바쁘고 조금 더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비록 휴가는 열흘 전에 알려줬지만, 개발자 같이 살던 옛날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어쨌든 그래도 이렇게 가끔 남편이 집에 없는 밤이면 새벽이 되어도 퇴근을 못하던 그 전남친(=현남편)과의 그 시절을 추억하게 될 것 같다. 그럼 다들 오늘 저녁에는 일찍 퇴근하셔서 전남친 토스트 드시길 바랍니다. 아래는 전남친 토스트 레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