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 내정자가 유럽법인장을 지낸 전문성을 앞세워 유럽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방산업계 경쟁 지형이 개별 무기체계 경쟁력에서 현지 생산능력, 공급망 확보 등의 역량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이 내정자의 현지화 전략의 성공 여부가 중요한 경영 현안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 내정자(왼쪽)가 9월10일(현지시각)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천무 수출 계약체결식'에서 이반 아누시치 크로아티아 부총리 겸 국방부장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한화그룹
16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따르면 이부환 내정자는 18일 제50기 임시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된다. 이 내정자는 7월30일 한화그룹이 단행한 주요 경영진 승진 및 일부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를 거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리더로 발탁됐다.
당시 인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이 각각 수석부회장, 부회장, 사장에 오른 상징적 인사다.
이 인사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부문, 한화시스템, 한화임팩트 사업부문, 한화자산운용, 한화세미텍 등 계열사 5곳의 대표가 바뀌었는데 그 가운데 한화그룹 방산 부문의 중추 역할을 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신임 대표에 시선이 몰린다. 오너3세 승진과 더불어 방산 부문을 이끌 이 내정자의 어깨가 가볍지 않은 것으로 읽힌다.
이 내정자는 지상무기체계 연구개발(R&D) 및 해외사업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내정자는 1969년생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 한화디펜스에서 기동화력연구소 체계기술센터장, 종합연구소 기동화력연구센터장, 종합연구소장 등 R&D 관련 주요 보직을 맡다가 2022년 해외사업본부장에 올랐다.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디펜스를 흡수합병한 2022년 11월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럽법인장을 역임하면서 현지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25년 2분기부터는 PGM(정밀유도무기)사업부장, 사업총괄을 지내고 있다.
최근 한화그룹 인사는 수익구조 개선을 목표로 하는 한화임팩트를 제외하고 다른 계열사 4곳에서 모두 ‘글로벌 사업’에 방점이 찍혔다. 이런 측면에서도 이 내정자가 선봉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내정자는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글로벌 방산시장 입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0일(현지시각) 크로아티아에 다연장로켓 ‘천무’를 18대 공급하는 수출 계약을 맺었다. 계약규모는 4억1천만 유로(약 6411억 원)로 한국과 크로아티아 사이 최초의 대규모 방산협력이 이뤄진 첫 사례다. 크로아티아는 최대 사거리가 290km에 이르는 천무를 4번째로 도입한 유럽 국가가 됐다.
산업계에서는 글로벌 방산시장의 경쟁구조가 유럽을 중심으로 블록화하는 상황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천무 수출 길을 뚫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2년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방산 수요가 크게 확대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비롯한 국내 방산기업들에게 우호적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방위사업청 및 산업연구원 집계를 종합하면 국내 방산 수출계약 규모는 2016~2020년 연간 30억 달러 안팎을 유지하다 2021년 73억 달러를 거쳐 2022년 173억 달러로 뛰었다. 지난해에도 154억 달러로 과거와 다르게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시장 확대와 함께 국내 방산업체의 가격 및 납기 경쟁력이 핵심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최근에는 경쟁 구도가 개별 무기체계 중심에서 공급망을 아우르는 포괄적 협력 역량으로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올해 5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고배를 마신 6조 원 규모의 루마니아 보병전투차(IFV) 사업에서 이런 흐름이 나타난 것으로 평가된다. 사업자로 선정된 독일 라인메탈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라는 측면에서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이점을 가져갔다는 분석이 많다.
권혁민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15일 ‘K-방산, 수출경쟁의 새로운 국면’ 보고서에서 “루마니아 보병전투차 사례는 유럽의 SAFE(유럽의 방위력을 높이기 위한 자금지원 제도)가 적용되는 사업에서 역내 생산과 현지 공급망 활용이 중요한 경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권 연구원은 “유럽 내 생산거점과 공급망 기반이 부족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경쟁 여건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며 “개별 제품 경쟁력뿐 아니라 생산거점 확보, 공급망 참여 여부가 수주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크로아티아 수주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금까지 추진한 현지화 전략이 수출로 이어진 성과라는 의미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에서는 천무 사업과 연계한 유도탄 현지 생산시설 구축, 기술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폴란드 최대 민간 방산기업인 WB그룹과 합작법인 설립에 합의했고 현지 생산시설 인프라를 마련하고 있다.
합작법인에서 생산할 물량은 폴란드에 우선 공급하고 이후에는 두 기업이 협의를 통해 탄종을 다양화하며 유럽 내 다른 국가로의 수출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렇게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럽 현지화 전략이 크로아티아 수주에 힘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4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분석보고서에서 “크로아티아 천무 사업에는 폴란드 WB가 지휘통제체계 공급에 참여하는데 폴란드에서 구축한 현지 협력 체계가 제3국 사업에 활용되는 것”이라며 “현지 협력 기반이 유럽 역내 공급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한 만큼 천무 운용국이 늘어날수록 폴란드 생산기반 활용에 따라 수주 경쟁력이 강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에도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를 생산할 현지 공장을 짓고 있다.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내정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중장기 계획인 해외투자를 면밀히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통해 2028년까지 11조 원 이상을 투자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6조2700억 원을 ‘매출 증대를 위한 해외투자’에 배정했다. 올해도 모두 2조2605억 원이 해외사업 확장을 위해 쓰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사회는 이 내정자의 사내이사 후보 추천 사유를 “20년 이상 방산 경력 및 해외사업 경험을 통해 주요 방산 사업에 높은 이해도를 보유한 인물”이라며 “글로벌 방산 기업으로서 전략 방향 수립 및 수행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