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프리랜서 사진작가 장진영씨는 전쟁 현장으로 향했다. 장씨가 찍은 사진은 시사IN과 워커스 등에 실렸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장진영씨와 언론·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씨의 항소와 여권법 제17조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계획을 밝히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4년여 뒤 장씨는 법정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전쟁을 취재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한 우크라이나에 사전 허가 없이 들어갔다는 이유에서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달 12일 장씨에게 여권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하고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장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언론·시민사회단체들과 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소원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여행금지 지역 방문을 제한하는 여권법 제17조가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현행 여권법 제17조에 따라 정부가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한 곳을 방문하려면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취재·보도는 예외적으로 방문·체류를 허가할 수 있는 사유에 포함된다. 시행령은 이를 ‘공공이익을 위한 취재나 보도’로 규정한다. 처리기간은 30일이다.
여행금지 제도는 전쟁이나 테러 등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여권법은 전쟁·내란·폭동·테러 등 국외 위난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특정 국가나 지역의 방문·체류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해외 언론인들이 수도 키이우로 들어가 취재를 시작한 것과 달리, 한국 언론인들은 외교부 허가가 난 2022년 3월18일에야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마저도 외교부 출입 언론사에 한해 키이우에서 멀리 떨어진 체르니우치주를 최대 3일간 취재할 수 있도록 했고, 방문 인원도 4명으로 제한했다. 프리랜서와 소규모 독립언론 기자들은 사실상 허가 대상에서 배제됐다.
한국 기자에게 여행금지 제도와 사전 허가가 전쟁터로 향하기 전 넘어야 할 문턱이라면, 현지에서 기자들이 마주하는 장벽은 전쟁터마다 다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군이 취재지역 접근을 통제한다. 국내외 언론인이 전투지역을 취재하려면 우크라이나군의 취재 허가를 받아 전자 프레스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 실제 전투지역을 취재할 때는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군 공보 조직의 승인도 필요하다. 우크라이나군은 작전 상황에 따라 취재지역을 녹색·황색·적색 구역으로 나눠 취재 조건을 달리한다.
취재 허가가 기자의 안전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지난 2월12일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이번 전쟁에서 기자와 미디어 노동자 2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는 무엇을 보도하느냐까지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3월 군에 관한 ‘고의적 허위정보’를 유포하거나 군의 활동을 ‘불신하게 만드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도입했다. CPJ에 따르면 이후 이 법에 따라 기자들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사례가 이어졌다. 전쟁터에 들어갈 수 있느냐뿐 아니라 현장에서 무엇을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느냐도 제약받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2026년 9월6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서 이라헴, 말라카, 칸부르, 발라위, 다두흐 가족 구성원들의 합동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가자지구 민방위대에 따르면 이들은 2023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 ⓒ로이터/연합뉴스
가자지구에서는 외국 기자의 독립적인 현장 접근 자체가 제한됐다. 국경없는기자회(RSF)에 따르면 2023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외국 기자들은 가자지구에 독립적으로 들어가 취재하지 못했다. 현장을 기록하는 역할은 가자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기자들이 주로 맡았다.
이들이 치른 희생도 컸다. RSF는 지난 4월15일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기자 220명 이상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숨졌다고 집계했다. 이 가운데 최소 70명은 취재 활동 때문에 표적이 됐거나 취재 중 숨진 것으로 RSF는 파악했다. RSF 등 국제 언론단체들은 외국 언론이 가자지구를 독립적으로 취재할 수 있도록 접근을 허용하라고 요구해왔다.
올해 2월 터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서는 통신 차단까지 이뤄졌다. 이란에서는 전국적 차원에서 인터넷이 차단됐다. 인터넷 감시단체 넷블록스에 따르면 전쟁 발발 뒤 이란의 인터넷 연결 수준은 평상시의 약 1%까지 떨어졌다. 기자가 현장에 있어도 취재원을 확인하거나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외부로 보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인명피해도 없지 않았다. CPJ가 전쟁과 관련해 여러 나라에서 집계한 언론인 피해를 보면 미국-이란 전쟁에서 기자 9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으며 11명이 구금되거나 조사를 받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군사작전에 따른 접근 통제가, 러시아에서는 보도에 대한 형사처벌 위험이 기자들의 취재를 제약한다. 가자지구에서는 외국 언론의 독립적인 진입이 제한됐고, 이란에서는 언론 통제에 통신 차단까지 더해졌다.
현장 접근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현장 취재의 필요성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AP 취재진은 2022년 러시아군에 포위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 남아 산부인과 폭격과 민간인 희생 등을 기록해 외부에 알렸다. AP에 따르면 당시 마리우폴 부시장은 이들의 보도가 인도주의 통로 개설과 민간인 대피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 보도로 AP 취재진은 이듬해 공공서비스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전쟁 현장을 기록하는 기자의 역할은 국제기구의 언론인 보호 논의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올해 공개한 무력분쟁 지역 언론인 보호 지침에서 기자들이 접근 제한과 검열, 괴롭힘, 자의적 구금, 공격 등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확하고 독립적인 보도는 전쟁이 민간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국제인도법 위반에 주의를 환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한국 기자의 전쟁 현장 접근이 제한되면 국내 언론의 전쟁 보도에서 외신과 현지 언론, 소셜미디어와 공개정보를 활용하는 비중도 커진다. 그만큼 한국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원을 만나고 직접 확인한 내용을 국내 독자에게 전달할 기회는 줄어든다. 한국 기자가 전쟁터에 없다는 것은 한국 독자가 전쟁을 누구의 눈으로 보고, 누구의 질문과 언어를 통해 이해할 것인지의 문제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