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5석'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전 대전시청 하늘마당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및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섭단체 요건 완화는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들이 꾸준히 요구해 왔던 사안이다. 김 대표가 이제 와서 이에 화답하고 나선 것인데, 민주당과 진보정당들 사이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16일 오전 민주당TV '민티07'에 출연해 "교섭단체 완화는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조국혁신당과 시민사회가 다 요구하고 있다"며 "현재 20명인데 진보정당도 그렇고 15석 정도가 처음에 하기에는 현실적이고 수용 가능하지 않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행 국회법상 교섭단체는 국회의원 20명 이상으로 구성할 수 있다. 교섭단체가 중요한 이유는 교섭단체를 구성해야 국회 운영과 의사일정 협의 등에 독자적 원내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내에 의석이 있는 정당이라도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국회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가운데, 12석을 보유한 조국혁신당은 의석수 부족으로 단독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가 제시한 15석은 이 같은 군소정당의 현실과 거대 양당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절충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국혁신당의 12석에 사회민주당(1석), 기본소득당(1석), 진보당(3석) 의석수를 더하면 17석이 된다.
김 대표도 "(교섭단체 기준 15석은) 조국혁신당 등 진보진영 정당들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며 "(진보정당들과 접촉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에 곧바로 논의를 해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이번 제안은 단순한 국회법 개정 논의를 넘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중도실용적 정책 노선과 지지율 하락이 맞물리면서 조국혁신당과의 불협화음이 이어지고, 다른 진보정당들도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진보정당 연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조국혁신당을 '통합'의 대상이 아닌 '연대'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더욱 명확하게 밝힌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지난 8월25일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와의 비공개 면담에서 "합당을 고려할 때 교섭단체 완화는 모순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는 '정치개혁' 의제인 교섭단체 조건 완화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듯한 태도라며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날 진보정당들과의 접촉을 통해 교섭단체 기준을 '15석'으로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조국혁신당은 공식적으로 민주당과 정치개혁이나 연대와 관련한 공식·비공식 접촉이 없었다며 선을 그었다.
조국혁신당 관계자는 이날 허프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김 대표가 교섭단체 요건을 15석으로 하는 것과 관련해 의견 교환이나 논의는 전혀 없었고, 15석 정도면 어떤지 제안한 정도로 이해했다"며 "기본적으로 소수정당들이 10석 정도면 연대해 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세팅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사무총장인 정춘생 의원. ⓒ정춘생 페이스북 갈무리
조국혁신당은 그동안 교섭단체 의석수 기준과 관련해 10석 또는 국회 상임위원회 전반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14석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왔다. 국회 18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의원 1명이 중복으로 속해있는 상임위를 제외한 14개 상임위에 최소 1명씩 참여하는 선에서 교섭단체 구성 인원을 조정해보자는 의미다.
실제 정춘생 조국혁신당 사무총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교섭단체 요건은 박정희 유신이 독재 연장을 위해 기존 10석을 20석으로 강화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라며 "완화한다면 유신 이전인 10석으로 낮추는 게 그 취지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현재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교섭단체 기준을 15석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다만 국민의힘이 교섭단체 요건 완화가 담긴 국회법 개정에 동의할 가능성은 낮다. 국민의힘으로선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들이 국회 일정과 의제, 운영 등에 대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구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노정현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교섭단체 기준 완화 논의를 언급한 것에 환영의 뜻을 밝힌다"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며 수많은 정치개혁 약속이 번번이 구호에 그치고 제자리걸음을 했던 전례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노 대변인은 이어 "교섭단체 기준을 담고 있는 국회법은 재적의원의 과반 찬성으로 개정할 수 있다"며 "민주당은 즉시 교섭단체 기준 완화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라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김 대표가 교섭단체 기준 완화 등 정치개혁 의제를 통해 진보정당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진보층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만큼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청와대도 개각 등으로 보여준 메시지가 좀 더 왼쪽을 챙기겠다는 거 아니겠나"라며 "중도층은 물론 진보층마저 이재명 정부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지고 있는데 교섭단체 기준 완화가 실현되면 김 대표가 '여당 대표로서 진보정당들과의 연대를 강화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진보야권 소속인 한 의원은 "교섭단체 정상화라는 방향성은 맞지만 김 대표께서 15석이라는 의석수를 다른 진보정당들과 논의를 거친 것처럼 말씀하시는 건 좋지 않다"며 "국민들께 왜 교섭단체 정상화가 이뤄져야 하는지를 더욱 설명하고, 민주당과 진보정당들 사이의 논의가 실제로 많이 이뤄진 다음 의석수를 꺼내야 오해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