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유럽연합(EU)과 '독특한 안보·경제 동맹'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캐나다를 해외 자본의 안전한 투자처로 내세우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유럽 밀착전략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캐나다-미국 관계가 크게 악화하자, 캐나다 외교의 근본틀을 개편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 AP통신=연합뉴스
카니 총리는 15일(현지시각) 유럽의회 방문을 앞두고 캐나다를 '해외자본의 안전한 유치처'로 만들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카니 총리의 이번 선언의 배경에는 최근 몇 주간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된 캐나다-미국 사이 무역전쟁이 자리잡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이 8월22일 약 200억 달러(한화 27조3천억 원) 규모의 관세를 캐나다 제품에 부과하자, 9월8일 미국산 제품 약 200억 달러 규모에 15~50%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캐나다산 유제품·오토바이·주류 등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로 맞대응했다.
미국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의 캐나다산 유제품과 오토바이 및 주류 등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는 캐나다의 지속적 차별에 대한 결정적 대응이다"고 규정했다. 이 수입 금지 조치는 9월29일부터 발효된다.
미국은 자동차·트럭·부품과 관련해 캐나다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2027년 1월부터 5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경고도 내놓고 있다. 캐나다가 굴복하거나 미국이 물러허지 않으면 두 나라의 갈등은 단기간에 봉합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무역갈등이 격화하면서 캐나다 내부에서는 반미정서가 도드라지고 있다.
이를테면 캐나다에서는 에스프레소 커피에 물을 부어 마시는 이른바 '아메리카노' 음료 이름을 '캐나디아노'로 부르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유럽 행보는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니 총리는 13일 토론토국제영화제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캐나다는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려는 게 아니다"며 "우리가 추진하고 시작하려는 것은 캐나다와 유럽연합 간의 독특한 동맹이다"고 말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이 "카니 총리가 특사를 통해 유럽연합의 '준회원' 지위를 얻으려는 가능성까지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를 부인하면서 유럽연합과 관계를 강화하려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실제 캐나다와 유럽연합와 광범위한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에너지·인공지능·방위·핵심광물 등 전략 부문부터 상품·서비스·인력의 자유로운 이동, 해저케이블·데이터센터·위성망 공동구축, 캐나다산 에너지의 대유럽 수출 인프라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통신=연합뉴스
캐나다와 유럽연합의 급속한 밀착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국정연설과 맞물려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16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내놓은 연설을 통해 캐나다와 진행할 새로운 협력에 대해 직접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은 전했다.
캐나다 주재 유럽연합 대사 즈느비에브 튀츠는 9일 캐나다매체 케네디언프레스에 "캐나다와 유럽연합은 기존 어디에도 없던 무언가 '독특한' 것을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니 총리의 구상이 순탄하게 진행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캐나다와 유럽연합은 자유무역협정(CETA)조차 맺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폴란드를 비롯한 10개 회원국은 아직 이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이에 이 협정의 일부 조항은 여전히 잠정적용에 그치고 있다.
동시에 캐나다는 지리적 현실을 큰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여전히 캐나다 수출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최대 교역국이며, 2025년 캐나다의 미국 수출 규모는 유럽연합과의 교역액을 압도적으로 웃돌았다.
캐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5년 대미 상품 수출은 5646억 캐나다달러(약 554조6천억 원)로, 30% 급증한 대유럽 수출 967억 캐나다달러(약 94조9천억 원)를 감안해도 여전히 미국이 캐나다 상품 수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압도적 최대 시장이다
결국 카니 총리가 그리는 그림은 미국을 완전히 대체하는 '탈미(脫美)'가 아니라, 관세 무기화라는 새로운 리스크에 대비한 '보험'으로서 유럽을 활용하겠다는 다변화 전략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압박을 계속 이어간다면, 캐나다의 친유럽 행보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려는 카니 총리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