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시런 콘서트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친 래퍼 매클모어가 공연장 측의 압박으로 투어에서 제외됐다. 이에 함께 무대에 설 예정이던 아티스트들이 "예술가에게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항의의 뜻으로 잇따라 투어 하차를 선언했다.
미국 래퍼 매클모어(왼쪽)과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 ⓒAP/연합뉴스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예술가들이 침묵을 강요받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에드 시런과 함께할 예정이었던 향후 투어 일정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오는 11월 남미 6개 공연에서 에드 시런의 오프닝 무대에 설 예정이었던 빌리 아일리시의 친오빠이자 그래미상 수상 프로듀서 겸 싱어송라이터인 피니어스는 15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에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팔레스타인 지지 발언으로 투어에서 제외된 맥클모어와 연대의 뜻으로 동반 하차를 택한 것이다.
이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에드 시런의 '루프(Loop)' 투어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을 예정이던 아티스트 네 팀이 모두 투어에서 하차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해방" 발언으로 투어에서 제외된 맥클모어에게 연대의 뜻을 밝히며 잇따라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래미상 수상자인 래퍼 맥클모어는 지난 4일 무대에서 약 2분간 내놓은 연설에서 가자지구와 "점령된 서안지구" 주민들을 향해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이라고 외쳤다.
이후 맥클모어의 발언을 둘러싼 반발이 이어졌다. 이스라엘계 미국인 협의회(IAC)는 맥클모어를 투어에서 제외하라는 청원에 나섰고, 일부 공연장 소유주들도 그의 출연에 반대했다. 이 가운데는 미국프로풋볼(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구단주이자 이스라엘의 주요 후원자로 알려진 억만장자 로버트 크래프트도 포함됐다.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에런 로는 15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을 통해 에드 시런 투어에 하차하겠다고 밝혔다. ⓒ에런 로 인스타그램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에런 로도 15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투어 하차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에드 시런의 '더 루프(The Loop)' 북미 투어에서 오프닝 아티스트로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에런 로는 이어 "아일랜드인인 우리는 집단학살과 강제 기아, 폭력적 점령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저는 억만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반대해 목소리를 내고, 아이들의 잔혹한 죽음을 알리는 사람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고 하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저는 제 자신에게 그리고 식민 지배에 맞서 저항하고 오늘날 제가 아일랜드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를 위해 싸웠던 제 조상들에게 떳떳해야 한다"며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이라고 적어 연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아일랜드 전통음악 밴드 비오가(Beoga) 역시 맥클모어에 연대하며 투어 하차를 선언했다. 비오가는 "우리는 시오니스트 로비에 의해 맥클모어가 침묵을 강요받은 일을 계기로, 에드 시런의 밴드로 참여해온 미국 '루프(Loop)' 투어의 남은 일정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비오가는 이어 "'팔레스타인 해방(Free Palestine)'을 주장하는 사람을 침묵시키는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지가 될 수 없다"며 "우리는 맥클모어의 공연과 연설이 있던 현장에 있었다.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전적으로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식민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아일랜드인들"이라며 "'팔레스타인을 위한 아일랜드 예술가들(Irish Artists For Palestine)' 운동의 창립 멤버로서 우리는 정의를 위해 행동해온 활동가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의 보컬 루카스 포르히하머는 15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을 통해 에드 시런 투어에 하차하겠다고 밝혔다. ⓒ루카스 포르히하머 인스타그램
덴마크 출신의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의 보컬 루카스 포르히하머 역시 투어 하차를 선언하며 팔레스타인에 연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15일 인스타그램에 "우리는 전쟁에 대해, 목숨을 잃는 민간인에 대해, 그리고 마땅히 자라날 권리가 있는 아이들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들이 어디에 살든 그들 위에 어떤 국기가 펄럭이든 말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돈이 있다고 해서 대화를 좌지우지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며 "누구의 은행 잔고도 누가 발언할 수 있는지, 어떤 고통을 우리가 인정해도 되는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세상에 내놓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이번 투어를 계속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남은 투어 일정에서 하차한다"고 밝혔다. 글 말미에는 팔레스타인 국기와 같은 빨강·초록·흰색·검정색을 띠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상징으로 쓰이는 수박 이모지를 남겼다.
미국 래퍼 맥클모어가 2024년 5월6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드는 모습 등이 담긴 영상을 올리며 “‘HIND’S HALL’이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개되면 수익금 전액을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맨 왼쪽). 맥클모어가 2023년 12월24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에 무대 위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이 메시지는 사랑이다”라고 외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올렸다. ⓒ맥클모어 인스타그램
이에 앞서 맥클모어는 14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려 투어 제외와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진짜 피해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며 "오늘도 사람들이 죽고 있고 내일도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가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사이에 중립적인 위치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중립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을 "의무"라고 표현하며 "칭찬이나 감사를 받을 만한 특별한 행동이 아니다. 용감한 행동도 아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인 에드 시런도 15일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입장문을 올렸다. 그는 맥클모어의 투어 제외가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시런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에 참담함을 느낀다. 양측에 초래된 고통과 아픔은 인류의 비극"이라며 "전 세계에서 너무나 많은 전쟁이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낳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맥클모어가 투어에서 빠진 것은 프로모터(공연 기획·운영사)의 결정이었지 제 결정이 아니었다. 맥클모어의 투어 계약은 저와 맺은 것이 아니라 프로모터와 맺은 것이었다"며 "그가 계속 오프닝 무대에 설 경우 향후 공연을 취소하겠다는 뜻을 공연장 측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시런은 "맥클모어가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그 의지와 신념을 존중한다"면서도 "같은 목표, 즉 평화에 이르는 데는 여러 접근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주 내내 양측 사이에 다리를 놓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며 "저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제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제 가치관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에드 시런(Ed Sheeran)은 ‘셰이프 오브 유(Shape of You)’, ‘퍼펙트(Perfect)’, ‘싱킹 아웃 라우드(Thinking Out Loud)’ 등 세계적인 히트곡을 낸 영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다. 그래미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국내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의 ‘메이크 잇 라이트(Make It Right)’와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작업에 참여하는 등 케이팝 아이돌과의 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