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먼저 인기를 끈 품목은 가방과 구두 같은 가죽 제품이었다. 이후 화장품, 의류, 자동차, 가구, 시계, 주얼리 순으로 인지도를 넓혀왔다.
몇 년 전부터는 주얼리가 성장세인데, 상반기 국내 백화점 3사의 럭셔리 주얼리 매출이 각 50% 이상 늘어났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덩달아 그간 덜 알려졌던 하이 주얼리에 대한 관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9월 서울의 까르띠에 메종 청담에서 까르띠에의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르 쾨르 데 피에르'를 기념하는 갈라 디너가 열렸다. 사진은 갈라 디너에 참석한 까르띠에 앰배서더 지수.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는 최고급의 원석과 독창적인 디자인 그리고 장인의 기술이 결합하여 탄생하는 주얼리를 말한다. 패션계의 오트 쿠튀르와 마찬가지로 디자인 당 한 피스씩만 제작하여 예술작품에 비견되기도 한다.
또한 각 브랜드의 독점 기술이 총동원되어 제작되므로 브랜드의 명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격 역시 적게는 수천만 원부터 수백억 원에 이르므로,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라고 해도 한정된 고객만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이 주얼리의 디자인은 희귀한 원석을 확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디자인에 원석을 꿰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원석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브랜드마다 1년에 한 번 혹은 두 번에 걸쳐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인다. 대개는 부호들이 여름휴가를 가기 전인 5월에서 7월 초에 생 트로페, 포르토피노 같은 유명한 휴양지에서 엄선된 VIP와 언론을 대상으로 소개되는데, 초대된 VIP는 한 피스씩인 하이 주얼리를 선점하기 위해 의도치 않은 경쟁도 해야 한다.
그간 국내에서 하이 주얼리에 대한 고정 고객은 있지만 대중적인 관심은 높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럭셔리 브랜드에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면서, 하이 주얼리의 매출이 치솟고 있다. 까르띠에, 불가리, 반클리프아펠, 티파니, 부쉐론, 쇼메 등의 브랜드가 예전보다 자주 국내 고객을 위한 하이 주얼리 쇼를 개최하는 것도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현상을 단지 ‘이제 하이 주얼리가 인기를 끌 차례’라고 평가해야 할까? 필자는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국내 고객이 ‘브랜드’가 아닌 ‘명품’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는 데 하이 주얼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명품이 가져야 할 아름다움과 장인 정신 그리고 희소성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하이 주얼리는 다소 희석된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를 충족시켜주는 제품인 것이다. 여기에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원석이 갖는 불변의 상징성도 그러한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요소인 것은 확실하다.
글쓴이 이윤정 작가는 1993년부터 2023년까지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명품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여러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가 주목하는 시장이 되기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그 현장을 취재하고 지켜봐왔다. 럭셔리 제품과 브랜드에 관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담아 쓴 첫 책 『언베일』은 202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됐다. 제45회 한국잡지언론상 기자 부문을 수상했고, 럭셔리 브랜드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대학과 기업 등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현재는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