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인 줄 알았던 여행이 사실은 어느 정도 준비된 여행이었다면, 우리는 리얼리티 예능에서 보여주는 상황을 어디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까.
8월16일 유튜브 채널 ‘엠뚜루마뚜루 : MBC 공식 종합 채널’에 공개된 전현무의 카자흐스탄 즉흥 여행 영상의 장면들. ⓒ유튜브 채널 ‘엠뚜루마뚜루 : MBC 공식 종합 채널’
지난 8월14일과 21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방송인 전현무가 갑자기 생긴 1박2일 휴가를 이용해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방송이 내세운 콘셉트는 ‘즉흥 여행’이었다.
전현무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인천공항으로 향했고, 현장에서 카자흐스탄행을 결정해 그 자리에서 항공권을 구매했다. 알마티에 도착해서도 숙소와 렌터카 등을 그때그때 구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예측 불가능성이 에피소드의 핵심 재미였다.
그런데 방송이 끝난 뒤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알마티시는 8월21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정부 공식 포털에 게재한 글을 통해 해당 방송을 소개하며 “촬영은 알마티시 관광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후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8월25일 관련 의혹에 선을 그었다. 제작진은 “이번 카자흐스탄 여행과 관련해 촬영 지원이나 협찬 등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첫 해명 이후에도 즉흥 여행의 진정성을 둘러싼 의혹과 시청자들의 비판은 이어졌다. 결국 제작진은 엿새 뒤인 8월 31일 두 번째 입장을 내놨다. 이번에는 설명이 달라졌다. 제작진은 “알마티시 관광청으로부터 금전적 협찬이나 제작비 지원을 받은 사실은 없다”면서도 “현지 촬영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와 현장 진행에 필요한 촬영 협조를 받아 원활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시청자들을 기만한 것 아니냐”, “조작 방송 아니냐” 등의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제작진은 9월4일 공식 사과문을 냈다. 제작진은 전현무가 당일 공항에서 목적지와 항공권을 직접 결정했다는 기존 입장은 유지했다. 다만 그 선택과 별개로 제작진은 카자흐스탄 촬영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인정했다.
제작진의 설명은 이렇다. 갑작스럽게 생긴 1박2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국가와 항공편을 미리 검토했고, 전현무가 평소 관심을 보였던 여행지 등을 종합한 결과 카자흐스탄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현무가 실제로 카자흐스탄을 고를 경우 곧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도록 스태프들의 항공권을 사전에 발권하고 현지 촬영 협조까지 요청해뒀다는 것이다.
전현무가 카자흐스탄이 아닌 다른 나라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제작진은 미리 끊어둔 항공권을 취소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사과문에서 “방송에서 ‘즉흥 여행’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여행과 촬영의 모든 과정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진행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며 “진솔함을 최우선으로 삼아왔으나 실제 촬영 과정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드리지 못해 오해와 혼란을 드렸다”며 사과했다.
제작진의 사과문이 나왔지만 ‘즉흥 여행’의 진정성을 둘러싼 의문은 남았다.
리얼리티 예능은 실제 상황을 기반으로 하지만 방송을 위해 제작되는 콘텐츠인 만큼 촬영과 편집, 장소 섭외 등 제작진의 일정 수준 개입은 불가피하다. 특히 해외 촬영의 경우 출연자와 스태프의 안전, 현지 촬영 허가 등을 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다만 이번 사례는 ‘즉흥성’ 자체가 에피소드의 핵심 재미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이어졌다. 이에 제작을 위해 필요한 사전 준비의 범위를 넘어, 방송에서 강조한 핵심 설정과 실제 촬영 과정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출연자의 선택이 즉흥적으로 이뤄졌더라도 제작진의 준비 과정이 시청자에게 전달된 모습과 달랐다면 이를 어디까지 ‘연출’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리얼리티 예능은 시청자가 방송에서 제시된 상황을 실제에 가깝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제작 과정의 모든 부분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프로그램의 핵심 설정과 실제 제작 과정 사이의 간극이 커질 경우 시청자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