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하반기에도 이어질 역대급 영업이익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1위 기업 도약 등을 기반으로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가 미국에 메모리 전공정 생산거점을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투자 압박 강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이 회장이 현지 신규 팹(Fab) 건설 결단을 내릴지 시선이 몰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여러 낭보 속에서도 '대미 투자'를 둘러싼 고민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9월4일 증권업계 관측을 종합하면 삼성전자가 3, 4분기 모두 100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메모리에 파운드리까지 실적 우상향 동력에 뒷심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안정성과 예측성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 낙관전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핵심은 장기공급계약(LTA)으로, 삼성전자는 미래 투자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하한가격을 설정하는 등 업황에 따른 불안정성을 해소하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생산능력의 최대 70%까지 기본 5년의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 특정 고객사에 쏠려있지 않은 균형성 원칙을 장기공급계약에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3년(2024~2026년) 동안 영업적자를 보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에서도 뚜렷한 반등 신호가 나온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엔비디아는 8월24일(현지시각) AI 추론용 반도체 그록3 LPX 양산 단계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는데 그록3 LPX에 탑재되는 언어처리장치(LPU)를 삼성전자 파운드리 4나노 공정에서 생산한다.
엔비디아가 반도체 제품 양산에 돌입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실적 반등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3일 KB증권은 삼성전자 3분기와 4분기 영업이익을 각각 104조 원, 117조3천억 원으로 전망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이날 삼성전자 분석보고서에서 “메모리 생산능력의 70%를 차지하는 5년 장기공급계약 비중 확대로 과거와 다르게 향후 고객별 맞춤형 설비투자가 가능해져 중장기 실적 가시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파운드리 사업은 3분기부터 4나노 LPU 양산 본격화, 수율 안정화에 힘입어 성과급 충당금을 제외하면 흑자전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평가에 있어 주요 요인으로 꼽히던 HBM에서 1위 도약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이재용 회장이 그간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AI 시장에서 뒤처진 HBM 경쟁력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를 고려하면 삼성전자에 미칠 긍정적 영향이 적지 않은 셈이다.
이 회장은 2025년 초 그룹 임원회의에서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2026년 초에도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숫자(실적)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며 경쟁력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라며 기술력 회복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아직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출하한 HBM4 실적이 크게 잡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앞으로 삼성전자의 시장 지위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3일 집계를 보면 2026년 2분기 매출 기준 HBM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는 33%로 2위를 기록했다. 앞서 3개 분기 연속 20%대 초반에서 10%포인트가량 급증한 수치다. 1위인 SK하이닉스 점유율 수치가 60% 안팎에서 50%까지 낮아지면서 격차가 20%포인트 아래로 좁혀졌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현재 HBM 매출 대부분은 HBM3E(5세대)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HBM4(6세대) 출하는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2027년 삼성전자가 HBM 시장 점유율 41%로 1위에 오를 것이란 글로벌 투자은행 UBS의 예측이 나온 이후 개선된 수치가 입증되고 있는 흐름이다.
이 회장으로서는 그간 삼성전자의 문제로 지적됐던 부분을 해소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적지 않은 고민에 놓여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미국 정부가 관세를 무기로 압박을 강도를 높이고 있어 현지 투자를 향한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반도체 관세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해 10월 관세 협상 당시 우리나라 반도체를 놓고 경쟁국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하겠다고 (미국 측에서) 얘기를 한 것이 있고 이 정신 아래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장관이 주요 20개국(G20) 혁신장관회의 참석 등을 위해 방미길에 오른 가운데 현재 반도체업계의 가장 큰 현안 가운데 하나인 대미 투자를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2일 CNBC 방송 인터뷰에서 반도체 부문을 놓고 “표적화하고 신중한 관세 정책을 도입할 것”이라며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가장 위대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특히 러트닉 장관이 지난 7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유치해 생산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고 말한 데 이어, 이번에는 TSMC의 미국 투자를 언급하면서 국내 기업들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삼성전자 등에 메모리 전공정 팹 신설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삼성전자는 미국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추가 증설을 공식화했지만 D램이나 낸드플래시 등 전공정 생산거점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 회장은 8월26일 이재명 대통령과 비공개 만찬을 진행했는데 반도체업계에서는 7월 만남 이후 1개월여 만에 다시 회동을 가진 만큼 삼성전자의 대미 반도체 투자에 관한 논의가 주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에는 미국 측의 꾸준한 압박에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 1호’는 반도체 분야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다만 당초 예상대로 에너지 사업이 대미투자 1호가 유력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경훈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8월21일 트럼프 관세 타임라인 보고서에서 “김정관 장관이 9월 안에 에너지 분야 사업을 1호 프로젝트로 선정하겠다고 알렸다”며 “미국이 한국 기업에 반도체 공장 현지 건설을 압박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사업성이 확보된 에너지·인프라 분야를 중심으로 대미 투자를 추진한다는 기존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