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인도와 미국에서 해외에 조선 부문의 생산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붙인다.
정 회장은 인도에서 조선소를 직접 건설하고 미국에서는 현지 조선소를 인수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HD현대그룹은 인도에서 중국에 맞설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미국에서는 현지 군함 시장에 진출하는 기회를 찾는 데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인도에서는 대형 조선소 건설로, 미국에서는 현지 조선소 인수를 통해 해외 사업 확장에 고삐를 죈다. 정 회장이 2026년 4월20일(현지시각)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인도 비즈니스포럼'에서 인도 기업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9월7일 인도 현지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HD현대 고위 대표단이 타밀나두주를 방문하면서 투투쿠디 조선소 건립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도 비즈니스라인에 따르면 2일과 3일 HD현대 대표단은 현지 항만청 관계자, 타밀나두주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투투쿠디 대형 조선소 설립을 위한 프로젝트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타밀나두주의 투투쿠디 지역은 인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형 조선소 건립을 위한 후보지 5곳 가운데 하나다. 인도 정부는 조선·해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마리타임 암릿 칼 비전 2047)을 추진하면서 이 전략의 하나로 신규 조선소 설립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투투쿠디 조선 단지는 2050에이커(약 250만 평, 여의도 면적의 약 2.5배) 규모로 계획되고 있다. 특수목적법인(SPC)이 설립됐고 기술·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정부의 기본원칙 승인까지 받는 등 신규 조선소 후보 단지 5곳 가운데 가장 빠르게 사업이 진척되고 있다.
현재는 300에이커 규모의 염전과 관련해 일부 토지 소유주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비즈니스라인은 “HD현대 고위 대표단의 이번 방문은 중앙 정부와 타밀나두주 정부가 투투구디를 주요 조선 ‘허브’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투자를 진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발걸음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HD현대는 타밀나두주의 신규 조선소 설립 파트너로 낙점된 뒤 2025년 12월 프로젝트 관련 업무협약을 맺고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고 있다. 투투쿠디 지역은 기온과 강수량 등에서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유사한 만큼 HD현대그룹에 유리한 입지를 갖춘 것으로 분석된다. 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진출해 있는 데다 인근 항만시설도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 있다는 호재도 있다.
정 회장도 인도 중앙 정부 차원에 대규모 정책과 맞물려 신규 조선소 건립에 직접 공을 들이고 있다.
정 회장은 2026년 초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직접 만나 HD현대그룹 조선 부문에서 인도라는 지역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1월 인도에서 열린 ‘글로벌 에너지 리더 라운드테이블’에서 “HD현대는 인도와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며 “인도는 해외 생산거점 다변화 전략의 핵심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내다봤다.
정 회장의 인도 진출은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 잠식이 지속하는 가운데 HD현대그룹 조선사업이 반복 건조로 원가를 절감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9월4일 영국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은 8월 글로벌 선박 점유율 7%를 기록했다. 2026년 월별 기준으로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반면 중국은 점유율 85%로 3개월 연속 80% 이상으로 압도적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향후 유조선(탱커)과 일반화물선(벌크선) 발주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인도는 HD현대그룹이 반복 건조를 실현할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HD현대베트남조선, HD현대필리핀조선에서 탱커와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반복 건조 효과와 낮은 인력비 등을 통해 효율성을 확보한 경험도 지니고 있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9월6일 수주산업 주간보고서에서 “다음 발주 사이클의 중심은 탱커와 벌크선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데 중국의 점유율을 뺏기 위해서 확보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원가경쟁력”이라며 “이는 국내 야드(생산기지)로 해결할 수 없는데 베트남, 필리핀에 이어 인도가 한국 조선업 역량이 필요한 상황에서 HD한국조선해양(HD현대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의 투투쿠디 전략은 이 구조를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인도에 이어 미국 조선소 인수도 검토하며 HD현대그룹 조선 사업의 확장, 특히 함정 분야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그룹은 미국 조선소 2~3곳과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지는 샌디에이고, 텍사스 멕시코만 등 미국 해군의 공급망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전해졌다.
HD현대그룹은 조선소 인수를 포함해 미국 현지에서 사업 확장을 위한 컨트롤타워도 마련한 것으로 파악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5월11일자로 미국에 100% 자회사인 HD현대USA를 설립했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HD현대USA는 기타서비스업을 주요업으로 한다.
HD현대는 8월 한국산업은행, 글로벌 사모펀드 서버러스캐피탈과 한미 조선산업에 공동으로 투자하기로 약속하면서도 미국 조선소 인수와 현대화를 주요 투자 분야로 못 박기도 했다.
정 회장의 미국 조선소 인수 움직임이 빨라지는 가운데 조선업계의 시선을 모으는 이유는 최근 해외 조선소에 함정 건조를 맡기려는 미국 정부의 행보에도 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해군 전문매체 USNI뉴스에 따르면 백악관과 해군은 현재 한국, 일본, 터키가 제안한 신형 호위함 설계안을 검토하고 있다.
USNI는 미국이 해외에서 호위함을 구매할 가능성이 생긴 이유로 앞서 8월13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대통령각서(NSPM) 서명을 통해 해외 조선소가 함정 초기 물량을 건조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들여다보고 있는 한국 호위함은 충남급(울산급 배치-Ⅲ)으로 HD현대그룹 조선 계열사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담당했다.
다만 미국 정부는 현지에 신규 조선소를 설립하거나 미국 조선소의 소유권 또는 과반수 지분을 인수한 기업이 해군의 함정을 건조할 대상이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HD현대그룹은 이 조건을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데 미국에 조선소를 인수하면 미국 함정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이 생기는 셈이다.
HD현대중공업은 8월21일 공시를 통해 미국 조선소 인수를 놓고 “HD현대그룹은 한·미 조선협력 마스가 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 및 지분투자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