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스타이넘 재단은 3일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녀가 뉴욕 자택에서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미국 여성 인권 운동의 아이콘 글로리아 스타이넘(사진)이 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자택에서 별세했다. ⓒ연합뉴스
글로리아는 미국 내 여성해방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장본인으로 20세기 여성 인권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된다. 여권 신장 운동 이외에도 동성 결혼 합법화, 사형제 폐지 등을 주장하며 인권 전반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963년 미국의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의 바니걸의 고용 현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발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취재를 위해 나이를 속여 위장취업을 했고, 휴 헤프너 제국의 추악하고 여성 차별적 현실을 폭로했다.
훗날 글로리아는 해당 기사가 여성의 성차별적 고용 현실은 조명되지 않은 채 ‘성인 클럽에 잠입 취재’한 사실만 화제가 된 것에 기사 쓴 일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이후 글로리아는 1969년 3월21일 자신의 임신 중절 경험담을 세상에 공개해 여성 인권 운동가로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미국의 여성 단체 ‘레드스타킹’ 주최 하에 열린 ‘낙태 인식 개선 집회’에서 22세 당시의 낙태 경험담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글로리아는 일순간에 임신 중절 권리를 옹호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임신 중절이라는 주제를 정치의 영역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그로부터 1년 뒤인 1970년 7월 뉴욕주는 낙태금지법을 완화했다. 1973년엔 미국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에서 여성에게 낙태할 헌법적 권리를 부여한 판결을 내면서 낙태권이 미국에서 합법적 권리로 인정되었다.
글로리아는 한국의 여성운동 흐름과도 접점을 가진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5개월 뒤, 글로리아는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여성운동과 낙태죄 폐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2015년 이후 한국사회의 고정관념을 뒤집고 있는 페미니스트의 활약이 매우 훌륭하고 고무적”이라면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앞으로 더 나타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로리아의 별세 소식에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전 부통령은 같은 날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글로리아는 젊은 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차세대 리더들을 위해 길을 열어줬다. 모든 여성의 강인함, 지성, 그리고 존엄성을 옹호하는 데 항상 힘썼다”며 글로리아를 추모했다.
미국의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 우리 일하는 여성들은 누구나 동등한 임금과 존중, 자기 신체결정권, 갖가지 선택권을 누리고 있으며 글로리아를 알던 모르던 모든 여성들이 글로리아가 쟁취하고 창조해 낸 (평등한) 삶의 조건을 누리고 있다”면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