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숙박시설의 청결 문제나 시설 하자로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하더라도 이를 명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강제적 기준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대 한 호텔에서 묵은 모녀는 객실에서 빈대가 발견됐으나 환불을 받지 못했다. AI 이미지.
지난 2일 JTBC '사건반장'에는 딸과 함께 부산을 찾았다가 해운대의 한 호텔에 투숙한 제보자의 사연이 소개됐다.
제보자는 객실에서 발견한 벌레를 사진으로 촬영한 뒤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한 결과 빈대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호텔 측에 항의했고, 호텔 측은 벌레를 직접 확인한 뒤 최근 인테리어를 새로 한 객실이라며 다른 방으로 옮겨줬다.
하지만 객실을 변경한 뒤에도 문제가 이어졌다. 제보자는 새로 배정받은 객실에서도 빈대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빈대가 캐리어나 의류 등을 통해 집까지 옮겨갈 가능성을 우려한 결국 호텔에 가져갔던 캐리어와 옷 등을 모두 버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호텔 측은 환불을 거부했다. 호텔 측은 당시 약 40만 원 상당의 객실로 변경해줬고, 자신들도 손해를 봤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역업체를 불러 필요한 조치를 진행했다는 점 역시 환불을 거부한 이유로 제시했다.
이번 사례는 한동안 잠잠했던 빈대 문제가 다시 소비자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국내에서 빈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23년이다. 그해 4월 서울 금천구의 한 모텔에서 첫 빈대 피해 신고가 발생한 이후 전국 곳곳에서 빈대 의심 신고가 잇따랐다.
2023년 11월 6일 기준 전국 7개 시·도에서 30여 건의 빈대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서 이른바 '빈대와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살충제 판매가 급증하는 등 빈대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이후 신고가 줄어들면서 사태는 점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빈대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올해 6월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빈대를 발견했다는 투숙객의 경험담이 온라인에 올라오면서 관련 논란이 재점화됐다. 여기에 이번 부산 호텔 사례까지 알려지면서 숙박시설의 위생 관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도 커지는 분위기다.
숙박시설 이용과 관련한 소비자 피해 역시 적지 않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접수된 숙박 계약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모두 6224건에 달했다.
특히 2025년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2662건으로 전년보다 38.7% 증가했다. 이 가운데 계약불이행·불완전이행 피해가 1370건으로 전체의 22%를 차지했다. 위생 불량과 시설 하자 등 숙박시설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문제는 숙박업소에서 위생 문제나 시설 하자가 발생하더라도 소비자가 실제 환불을 받기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의 피해구제 절차를 거치더라도 소비자와 사업자가 합의에 이르는 비율은 약 54%에 그친다.
가장 큰 이유는 현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사실상 권고 수준이어서 법적 구속력이 없다. 사업자가 기준을 따르지 않더라도 직접적인 제재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는 이유다.
소비자가 소액민사소송을 통해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소송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피해 금액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법적 대응 자체를 포기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빈대와 같이 숙박시설에서 중대한 위생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의 경우 숙박시설의 심각한 위생 문제를 보다 명확한 계약 해제 사유로 인정하는 사례도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경우 숙박시설에서 곤충이나 곰팡이, 심각한 오염 등 중대한 위생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가 계약 해제와 전액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소비자는 객실 내 빈대나 곰팡이, 악취, 린넨 오염 등 위생 문제를 사진과 영상으로 객관적으로 증거를 확보한 뒤 호텔 측에 이메일이나 공식 청구서 등 서면으로 환불 또는 계약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호텔이 이를 거부할 경우 러시아 연방소비자감독청인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Rospotrebnadzor)에 신고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는 러시아 소비자권리보호법에 따라 소비자 보호와 공중위생 문제에 대한 행정감독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업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으며, 사안이 중대할 경우 검찰에 사건을 이송하거나 임시 영업정지 등의 제재도 가능하다.
숙박시설의 위생 문제가 중대한 계약 위반으로 인정되면 사업자는 법정 기한인 10일 이내에 전액 또는 일부를 환불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행정 제재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