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호르몬은 난소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변화는 뇌에서도 감지된다. 갱년기가 되면 알고 있던 사람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고, 냉장고 문을 연 채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잊는 일이 잦아진다. 생리와 임신에 관여하는 호르몬으로만 알았던 에스트로겐이 사실은 기억과 학습, 기분을 조율하는 뇌에도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갱년기 여성의 기억력·집중력 저하를 표현한 이미지.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먼저 기억력 이야기부터 해보자. 기억을 형성하고 저장하는 ‘도서관’ 같은 해마와 판단하고 계획하는 ‘사령탑’인 전전두엽에는 에스트로겐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많이 분포한다. 에스트로겐은 뇌세포가 포도당을 에너지로 활용하도록 돕고,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
그런데 갱년기에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일정하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린다. 익숙한 방식으로 작동하던 뇌가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거나, 무언가를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가 목적을 잊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휴대전화나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한참 찾는 일도 잦아질 수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내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 쉽지만, 다행히 이런 변화는 대개 정보 자체가 사라졌다기보다 머릿속 서랍에서 정보를 꺼내는 속도가 잠시 느려진 것에 가깝다. 힌트를 들으면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개인차는 있지만, 이런 변화는 갱년기에 두드러졌다가 몸과 뇌가 새로운 호르몬 환경에 적응하면서 점차 안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을 힘들게 만드는 또 다른 증상은 집중력 저하다. 예전에는 하던 일 중간에 다른 업무가 생겨도 얼른 처리한 뒤 다시 원래 업무로 돌아오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갱년기가 시작되면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순간 머릿속에 ‘버퍼링’이 걸린 듯 멈춰버리곤 한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고, 작은 방해에도 생각의 흐름을 놓친다.
단순히 업무 능력이 떨어진 탓이 아니다. 에스트로겐의 변화는 계획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주의를 옮기는 뇌의 ‘실행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에 밤새 괴롭히는 안면홍조와 식은땀, 그로 인한 수면 부족, 스트레스와 기분 변화까지 겹치면 집중력은 더욱 흔들린다. 결국 갱년기의 집중력 저하는 뇌 한 곳에서 생긴 고장이라기보다, 여러 증상이 도미노처럼 맞물려 나타나는 결과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가 모두 갱년기 때문은 아닐 수 있다. 빈혈, 갑상선 기능 이상, 우울증, 복용 중인 약물 등 다른 원인이 없는지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은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다. 편안한 수면 환경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주 2~3회 정도의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은 수면과 기분을 개선하고 뇌 혈류에도 도움을 줘 장기적 뇌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호르몬 치료는 덥고 땀이 나는 증상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 증상들 때문에 잠을 설치고 집중력이 떨어졌다면, 호르몬 치료 후 수면과 기분이 좋아지면서 기억력과 집중력도 함께 나아지기도 한다.
갱년기의 뇌 변화는 부끄러워하거나 숨겨야 할 증상이 아니다. 호르몬 변화와 관련해 나타날 수 있는, 관리 가능한 변화다. 불안해하기보다는 지금 겪고 있는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전문의와 함께 관리해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