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백화점 실적 개선을 이끈 명품 매출은 샤넬·구찌 등 전통적 명품 브랜드의 인기가 되살아난 결과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젊은 소비자가 유입되며 명품 소비층이 넓어졌고, 선호 브랜드와 인기 품목도 다변화하면서 명품 시장 전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저변에는 명품을 단순한 과시용 사치품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고 상품에 담긴 역사·희소성·디자인 등 고유한 가치를 소비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 모델이 스위스 명품 주얼리·시계 브랜드 피아제의 ‘아우라 하이주얼리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유통업계 움직임을 종합하면 명품 소비의 다변화는 특정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여러 브랜드와 품목으로 분산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1분기 신세계백화점의 전체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8% 늘었지만, 주얼리·시계 매출은 46.5% 증가했다. 롯데와 현대백화점에서도 해당 품목 매출이 각각 55%, 50.2% 늘었다. 상반기 백화점 3사의 신규 명품 구매 고객 비중도 평균 62.8%에 달했다.
◆ ‘남들이 사는 명품’에서 ‘내가 고른 명품’으로
명품을 고르는 기준도 가격과 유명세에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가치와 취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올해 명품 소비 조사에서 응답자의 76.8%는 과시적 명품 스타일을 촌스럽다고 평가했고, 70.8%는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명품’이 세련돼 보인다고 답했다.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보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많았다. 59.7%는 명품을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매한다고 답했고, 57.3%는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에 대한 보상 의미가 더 크다고 답했다.
실제 명품 선택에서도 브랜드 인지도보다 디자인과 세계관, 희소성처럼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따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배우 고현정이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 아르투스 베르트랑의 메달 주얼리를 착용한 것이나, 가수 지드래곤이 조형적이고 스트리트 감성이 강한 제이콥앤코 주얼리를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브랜드인지보다 제품의 상징성과 독특한 디자인이 자신의 개성과 얼마나 잘 맞는지가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명품 시계에 기업 로고나 내부자만 아는 문구를 새기는 맞춤형 소비도 나타나고 있다. 오픈AI가 소수 임직원을 위해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와 7점의 한정판을 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비싼 시계를 소유하는 데서 나아가, 희소성과 개인화된 의미까지 명품의 가치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 '초고가 명품' 대신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 찾는다
명품 소비의 다변화는 가격대에서도 나타난다. 초고가 제품만을 고집하기보다 브랜드 역사와 디자인, 품질을 갖춘 비교적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 롱샴·코치·폴로랄프로렌처럼 20만~100만 원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브랜드가 젊은 소비자들의 선택지로 떠오르는 이유다.
이들 브랜드는 초고가 명품과 일반 대중 브랜드 사이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예산과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중간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명품 소비가 유명 브랜드의 고가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격과 디자인 실용성 브랜드 정체성을 함께 따지는 방식으로 세분화되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롱샴의 ‘르 플리아쥬’는 1993년 출시된 접이식 가방으로, 가볍고 실용적인 데다 비교적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키링과 참을 달아 가방을 꾸미는 일명 ‘가꾸’(가방 꾸미기)가 유행하면서 젊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다시 소비하고 있다.
코치도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대신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평균 판매가격이 높아졌는데도 신규 고객 약 900만 명이 유입된 것은 ‘싼 명품’을 찾는 수요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폴로랄프로렌 역시 가격을 낮추지 않고 평균판매가격을 15% 높였지만, 대표 상품과 브랜드의 역사·정체성을 앞세워 성장을 이어갔다.
◆ 명품관도 ‘브랜드 나열’에서 ‘취향 제안’으로
백화점 명품관도 유명 브랜드를 나열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발견하도록 돕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명품관의 경쟁 역시 유명 브랜드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서 새로운 브랜드와 상품을 얼마나 잘 제안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명품관 웨스트 3층을 럭셔리 슈즈 중심에서 패션·라이프스타일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곳에는 무신사가 운영하는 편집숍 ‘엠프티’가 들어섰으며, 매장 상품의 90% 이상을 해외 럭셔리·컨템포러리 브랜드로 구성했다. 전통 명품 브랜드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브랜드까지 한 공간에서 선보이는 것이다.
롯데백화점도 명품관의 상품 구성을 넓히고 있다. 인천점은 피아제·불가리·티파니앤코·부쉐론·그라프 등 명품 주얼리 브랜드를 강화했고, 노원점은 K패션과 스포츠·뷰티·주얼리·컨템포러리 브랜드를 함께 확대했다. 단순히 고가 브랜드의 매장을 유치하는 데서 나아가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비교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구성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