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군이 직접 운영하는 유기동물 보호시설에서 마주한 것은 ‘보호’가 아닌 죽음이었다. 길 위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개와 고양이가 보호소에서 170마리 이상 사체로 발견됐다.
동물보호단체 유엄빠(유기동물의 엄마아빠)는 8월31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160마리가 뒤엉켜 있는 죽음의 수용소. 주말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밥을 주지 않았다. 개들은 최소 64시간을 굶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왼쪽). 유엄빠는 같은 날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냉동고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체들. 대부분 교상. 물려 죽은 겁니다"라는 글과 함께 다른 사진을 올렸다. ⓒ유엄빠 인스타그램
살아 있는 동물은 굶고, 죽은 동물은 냉동고에 쌓였다. 이 모든 일이 민간 보호소가 아닌 장흥군이 직접 운영하고 관리하는 유기동물 보호시설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관리·감독 책임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사단법인 ‘유엄빠(유기동물의 엄마아빠)’는 2일 수요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호소 냉동고에서 다수의 동물 사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유엄빠는 “보호소 냉동고에 죽어서까지 방치되어 있던 생명은 무려 개 166두, 고양이 9두 이상”이라며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사체 기준이니 실제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엄빠는 앞서 8월31일 “주말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밥을 주지 않았다”며 “개들은 최소 64시간을 굶고 있다”고 폭로했다.
암수 뒤섞인 채 임신·출산 반복, “개가 개를 물어 죽이기도”
유엄빠는 8월31일 인스타그램에 "전남 장흥군이 직접 운영하는 '죽음의 보호소'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을 올려 보호소 실태를 폭로했다. ⓒ유엄빠 인스타그램
동물보호단체 ‘리패밀리 다시가족’은 8월31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교배, 번식, 개가 개를 잡아 먹는 장흥 직영 보호소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시설 내부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영상에 담긴 현장은 ‘보호’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패밀리는 “암수 분리 없이 방치해 보호소 내부에서 임신과 출산이 반복됐다”며 “개들끼리 물어 죽이는 사고와 사체가 훼손·포식된 정황이 지속되는데도 담당자는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영상에서도 보호시설 곳곳에서 사체들이 발견됐다.
시스템에는 36마리, 현장에는 160마리, 기록은 어디로 갔나
더 큰 의문은 ‘기록’에서 나온다. 2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따르면 당시 장흥군 관리시스템이 파악하고 있던 보호동물은 36마리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160마리가 확인됐다.
리패밀리는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는 2026년 4월 이후 해당 보호소의 공고가 전무하다”며 “안락사·폐사·보호소 내 출생 개체에 대한 기록도 전혀 공개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단체는 이런 상황이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닐 가능성도 제기했다. 리패밀리는 사체가 방치된 정황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2019년부터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장흥군은 몰랐다고 할 수 없다”, 2022년부터 군의회서 문제 언급
유엄빠는 8월31일 인스타그램에 "전남 장흥군이 직접 운영하는 '죽음의 보호소'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폭로 글을 올렸다. ⓒ유엄빠 인스타그램
장흥군이 보호시설의 문제를 사전에 파악할 기회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패밀리는 “장흥군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2022년부터 동물보호센터 건립 논의가 시작됐고 이후 매년 관련 문제점이 의회에서 언급됐다”며 “장흥군은 몰랐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장흥군은 지난 2023년 2월 기존 임시동물보호센터의 시설 노후화와 유기동물 증가에 따른 수용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새로운 동물보호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계획에는 총사업비 3억 원을 들여 연면적 400㎡ 규모의 시설에 사육실과 진료실, 격리실, 사료보관실, 운동장 등을 설치하는 내용이 담겼다. 관리인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리패밀리에 따르면 장흥군은 지난 7월에도 오는 2028년까지 사업비 10억 원을 투입해 새로운 동물보호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리패밀리는 “지금 필요한 것은 새 건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의무와 최소한의 관리조차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즉각적인 시정”이라고 강조했다.
‘보호’ 위한 법과 지침은 이미 있었다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은 동물보호센터가 갖춰야 할 시설과 인력 등에 관한 기준을 별도로 두고 있다. 센터 운영 과정에서 지켜야 할 준수사항도 규정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별도의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리패밀리는 동물학대를 금지한 동물보호법 제10조와 유실·유기동물의 구조·보호 의무를 규정한 제34조, 보호동물 공고 의무를 담은 제40조 등을 근거로 법 위반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들은 “법적 의무를 수년간 이행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라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동물보호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지자체가 운영하고 지자체가 감독한다면, 누가 감시하나
동물보호단체 ‘유엄빠(유기동물의 엄마아빠)’가 지난 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한 장흥군 유기동물 보호시설의 모습. 유엄빠는 “죽음의 수용소였던 장흥군 유기견 보호소에 즉각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며 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유엄빠 인스타그램
논란이 확산되자 장흥군은 현장 상황이 알려진 당일 저녁부터 긴급 인력을 투입했다.
암수 구분 없이 함께 수용돼 있던 개들을 분리하고, 공격성이 있는 개체와 갓 태어난 새끼를 별도 공간으로 옮겼다. 고양이 보호공간을 포함한 실내 컨테이너에는 냉방기 2대도 긴급 설치했다.
이번 사태가 던지는 질문은 장흥군 한 곳에 그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6년 6월 기준 전국에서 운영 중인 동물보호센터 226곳 가운데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은 89곳, 위탁 운영 시설은 137곳이다. 전체 동물보호센터 10곳 중 약 4곳이 지자체 직영인 셈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민간 위탁시설이 아닌 장흥군 직영 보호시설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관리·감독 체계 전반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영 보호시설은 지자체가 ‘운영자’이자 ‘감독자’다. 내부 감시가 작동하지 않으면 과밀수용이나 개체 관리 부실이 발생해도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바로잡기 어렵다. 보호동물 수와 사료·식수 공급, 치료 여부 등 기본적인 운영 실태를 정기적으로 들여다볼 별도의 점검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