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콘텐트가 TV와 SNS, 광고와 음식 메뉴판까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콘텐트가 늘어는 것은 좋지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저품질 콘텐트의 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I의 발전은 우리의 취향을 어떻게 바꿀까? AI로 생성한 이미지.
3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와 제몐신문 등에 따르면 40분 분량의 에피소드 30편으로 구성된 AI 드라마 '후서유기(后西游记)'가 지난달 31일 동영상 플랫폼 망고TV를 통해 공개된 데 이어 후난위성TV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후서유기'는 중국 고전소설 '서유기'의 뒷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화과산과 구름, 요괴, 법술 등 현실의 촬영 기술만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신화적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AI 제작 기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 방송의 성적도 눈에 띈다. 실시간 최고 시청률이 1.5%를 넘어서며 같은 시간대 방송된 성(省)급 위성TV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제작사인 망고TV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이틀 연속 주가가 20%씩 상승하며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AI로만 제작된 첫 장편 드라마 ‘후서유기’가 지난달 31일부터 후난 위성TV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후난 위성TV
특히 이 작품은 중국을 대표하는 방송사 가운데 하나인 후난TV의 황금시간대인 오후 8시에 정규 편성돼 전국에 방송되고 있다. 실제 배우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은 AI 드라마가 대형 방송사의 황금시간대에 편성돼 전국 방송에 나선 것은 전례를 찾기 쉽지 않다.
AI로 제작한 콘텐트는 제작비와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 제작 경험이 부족한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도 비교적 쉽게 영상과 이미지, 음악 등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역시 AI 콘텐트 확산을 이끄는 배경이다.
하지만 AI 콘텐트가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대중의 피로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생성형 AI로 제작된 콘텐트 가운데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물이 대량으로 쏟아지면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후서유기' 역시 시각적 연출과 상상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캐릭터의 표정과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화려한 배경과 영상미를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물의 섬세한 감정과 자연스러운 동작에서는 아직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AI 콘텐트 범람'이 가져올 문제
AI로 생성한 음식 이미지. ⓒ온라인 커뮤니티
생성형 AI를 활용해 값싸고 빠르게 대량 생산한 저품질 디지털 콘텐트를 'AI 슬롭(AI slop)'이라 한다. 'AI 슬롭'은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 음성 등 콘텐트 전반에서 비슷한 템플릿과 형식을 반복하며 만들어지는 콘텐트를 일컫는다.
'AI 슬롭'에 대한 사회적 피로감이 커지면서 이 용어는 지난해 12월 미국 사전 출판사 머라이어 웹스터(Merriam-Webster)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SNS와 블로그, 숏폼 영상은 물론 TV와 스트리밍 플랫폼까지 AI 콘텐트가 빠르게 침투하면서 이용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생성형 AI로 만든 음식 광고와 메뉴판 이미지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햄버거나 스테이크, 냉면처럼 익숙한 음식이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질감과 색감 때문에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린다는 반응이 나온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진다는 AI 생성 음식 광고'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특히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음식의 질감이다. AI가 만든 이미지에서는 밥알이나 깨처럼 작은 요소가 지나치게 선명하게 표현되거나 빵과 고기 표면에 비슷한 무늬가 반복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어색함은 단순히 음식 사진에 대한 불쾌감을 넘어 음식점에 대한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메뉴 사진도 AI로 만들었다면 리뷰까지 AI로 작성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음식 사진이 실제 촬영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업체가 제공하는 다른 홍보물과 후기까지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AI 콘텐트의 범람은 특히 SNS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틱톡에서는 신규 계정에 처음 노출되는 콘텐트 가운데 상당수가 AI로 제작된 영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조사에서는 신규 계정에 처음 노출되는 500개 영상 가운데 59%가 AI 생성 콘텐트로 나타났으며, AI 생성 영상과 함께 단순 반복형 저노력 콘텐트인 이른바 '브레인롯(brainrot)' 콘텐트 역시 대거 노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같은 콘텐트가 계속 늘어날 경우 플랫폼 생태계 전반에 '밀어내기 효과(push-out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다. 이용자가 신뢰할 만한 정보와 콘텐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플랫폼 알고리즘은 클릭과 체류 시간을 노린 반복적이고 유사한 콘텐트를 다시 대량 노출하는 악순환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AI 콘텐트가 많아질수록 이용자들은 원하는 정보를 찾기 어려워지고, 양질의 창작물이 저품질 콘텐트에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누구나 쉽게 콘텐트를 생산할 수 있게 된 만큼 앞으로는 콘텐트의 '양'보다 신뢰성과 완성도를 가려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AI의 발전으로 이뤄지는 장르·취향의 세분화
어느 순간부터 음악 취향도 개인화가 됐다. ⓒSK텔레콤
다만 AI 콘텐트의 확산이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생성형 AI의 발전이 오히려 개인의 취향을 더욱 세밀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콘텐트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 모델을 추천 시스템과 결합하면 이용자의 선호를 단순한 점수나 클릭 기록이 아니라 자유로운 문장과 서술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조합의 콘텐트를 제안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기존 추천 시스템은 인기 콘텐트나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용자의 선택을 중심으로 콘텐트를 추천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생성형 모델과 교차 도메인 추천 기술을 활용하면 사용자의 세부 상품군별·상황별 취향 차이까지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책과 영화의 취향을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정서와 전개 속도, 분위기 등 여러 기준으로 나눠 분석한 뒤, 익숙한 콘텐트와 새로운 콘텐트 사이의 중간지대를 추천하는 '부분 전환 추천'도 가능해질 수 있다.
영상 콘텐트와는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기업 셔터스톡이 2026년 8월 공개한 음악 장르 예측 연구에서 "AI가 음향·분위기·템포·악기 구성 등을 다차원으로 분석해 기존에 없던 하위 장르를 자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며 플랫폼 측에서는 이를 추천·검색·큐레이션에 활용해 장르 세분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결국 AI는 콘텐트를 무한정 쏟아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용자의 취향을 더 정교하게 이해하는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AI가 만든 콘텐가 대중의 피로를 키우는 'AI 슬롭'으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취향과 창작의 가능성을 넓히는 도구가 될지 전망이 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