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예술가 지몬 베케르트(Simon Weckert)가 만든 ‘디지털 카무플라주(Digital Camouflage)’다. 2025년 처음 공개된 작품이지만 최근 해외 매체들이 잇달아 소개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베케르트는 공식 프로젝트 페이지에서 게시 된 디지털 카무플라주. ⓒ지몬 베케르트 공식 홈페이지
겉으로 보면 화려한 색과 추상적인 무늬가 들어간 셔츠다. 사람의 눈에는 평범한 옷처럼 보이지만 AI가 영상 속에서 사람을 탐지하는 과정에 혼란을 일으키도록 설계됐다.
셔츠의 비밀은 화려한 무늬에 있다. AI 카메라는 사람의 몸이나 옷에서 특정한 특징을 찾아 화면 속에 사람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그런데 이 셔츠의 무늬는 AI가 이런 특징을 제대로 찾지 못하도록 헷갈리게 만든다. 사람이 카메라 앞에 있어도 AI가 ‘사람’이라고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원리다. 이처럼 AI의 판단을 헷갈리게 만들기 위해 만든 무늬를 ‘적대적 무늬(Adversarial Pattern)’라고 한다.
다만 이 옷을 입는다고 모든 AI 감시 카메라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연은 공개형 객체 탐지 시스템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베케르트 역시 경찰이나 정부기관 등이 사용하는 실제 감시 시스템에서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베케르트가 이 옷을 만든 목적도 감시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디지털 카무플라주를 ‘입을 수 있는 미디어 예술(Wearable Media Art)’이자 AI 감시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비평적 작품으로 제시한다.
베케르트는 공식 프로젝트 페이지에서 디지털 카무플라주를 ‘2025년부터 현재까지(2025–ongoing)’ 진행 중인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같은 해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행사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에서도 선보였다.
1년 전 공개된 작품이 지금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AI를 활용한 영상 감시 기술의 확대가 있다.
베케르트는 특히 베를린의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인 코트부서 토어(Kottbusser Tor)에 AI를 활용한 영상 감시 기술이 도입되는 상황에 주목했다. 기존 CCTV가 영상을 촬영하고 기록하는 데 그쳤다면 AI가 결합된 카메라는 촬영된 영상을 분석해 사람의 움직임이나 행동까지 자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해외 매체들이 디지털 카무플라주를 ‘AI 투명망토(AI invisibility cloak)’ 등에 빗대 잇달아 소개하면서 작품이 다시 알려졌다.
전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입을 수 있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디지털 카무플라주는 셔츠 형태로 제작돼 일반인에게 판매되고 있다. 가격은 약 88달러(약 12만 원)다.
베케르트의 공식 프로젝트 페이지에는 구매 페이지가 연결돼 있으며, 판매 수익의 일부는 디지털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감시 기술의 확대에 대응하는 단체에 기부된다.
결국 베케르트가 보여주려는 것은 사람이 보기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무늬 하나가 AI의 판단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기계의 판단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묻는다.
AI가 인간을 끊임없이 보고 인식하고 분류하는 시대, 우리에게는 AI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권리도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