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을 집고, 포장하고, 다음 로봇에게 건넨다.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에서 실제 노동으로, 휴머노이드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CJ대한통운 휴머노이드 로봇이 올리브영 물류센터에서 포장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CJ대한통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CJ대한통운에서 나타났다. CJ대한통운은 최근 경기도 용인 양지 올리브영 물류센터에 휴머노이드 양팔 로봇 2대를 투입해 실제 고객의 물류 업무를 맡겼다. 로봇은 포장 라인에서 박스 안에 완충재를 넣는 작업을 수행한다.
지난해 군포 풀필먼트센터에서 휴머노이드의 현장 적용 가능성을 검증한 데 이어 이번에는 실제 운영 공정에 투입했다. 지금까지의 휴머노이드가 ‘일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가까웠다면, CJ대한통운은 실제로 물류 업무를 맡기고 그 과정에서 로봇이 일을 배우도록 하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실제 고객 물류에 투입한다는 점은 단순한 상용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상품의 종류와 상태, 주문량, 작업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를 현장에서 그대로 마주할 수 있어서다. 로봇이 어떤 상품을 집고, 어디서 작업에 실패하고, 어떤 상황에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지까지 데이터로 쌓인다. CJ대한통운은 이를 AI 학습에 활용해 휴머노이드의 작업 정확도와 환경 대응력을 높인다.
특히 물류센터에서 확보되는 데이터는 로봇의 업무 범위를 넓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현재는 완충재를 넣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향후 피킹·분류·검수·포장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하나의 휴머노이드가 여러 공정을 연속해서 수행하는 것이 CJ대한통운의 목표다. ‘한 가지 일을 잘하는 로봇’에서 ‘여러 일을 배워가는 로봇’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CJ대한통운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컬리는 LG CNS와 새벽배송 물류센터에서 휴머노이드의 현장 적합성을 검증하고 있고,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의류 포장처럼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상품을 다루는 작업을 실증하고 있다. LG CNS와 LX판토스는 셔틀로봇과 휴머노이드가 하나의 작업을 나눠 수행하는 방식도 시험하고 있다. 아직 대부분 실증 단계지만, 휴머노이드가 물류센터의 여러 공정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흐름은 같다.
물류센터가 휴머노이드의 인기 직장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작업의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제조공장처럼 작업 대상과 동선이 일정하지 않고 상품마다 크기·모양·재질이 다르다. 같은 포장공정에서도 어떤 상품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작업 방식이 달라진다.
기존 자동화 설비는 정해진 작업에서는 높은 생산성을 내지만 상품이나 공정이 바뀌면 설비를 다시 구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휴머노이드는 사람과 비슷한 손과 팔, 이동능력을 활용해 사람이 쓰던 작업대와 설비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여러 작업에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 자동화가 놓친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공정’을 겨냥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물류 자동화의 관심도 ‘얼마나 빠른가’에서 ‘얼마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상품을 집고 포장한 뒤 다른 공정으로 이동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면 공정마다 별도의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던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AI의 역할도 커진다. 물류센터에서 로봇이 마주하는 수많은 상품과 작업 상황이 학습 데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경쟁의 무대가 물류센터인 동시에, 로봇의 실력을 키우는 데이터 생산 현장이 되는 셈이다.
다만 지금의 휴머노이드를 곧바로 인력 대체로 보기는 어렵다. 국내 사례 대부분이 특정 공정의 정확도·속도·안전성·경제성을 검증하는 단계이고, 배터리와 유지보수 비용, 작업 실패와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휴머노이드가 연구실을 벗어나 실제 고객의 물건을 다루는 ‘로봇 직원’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변화는 분명하다. 물류센터가 휴머노이드의 인기 직장으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