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SK브로드밴드에서 떼어내 별도 법인으로 세운다.
성숙 단계에 접어든 유선·미디어 사업과 묶여 있던 데이터센터를 따로 꺼내 시장의 가치 재평가를 끌어내고, 이를 발판으로 대규모 외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SK브로드밴드에서 떼어내 별도 법인으로 세운다. 데이터센터 사업을 따로 꺼내 시장의 가치 재평가를 끌어내고, 이를 발판으로 대규모 외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정 사장이 3월3일(현지시각) MWC26에 참여한 모습. ⓒSK텔레콤
9월1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정 사장이 AI 데이터센터 사업 추진 체계에 맞춰 법인을 분리한 것은 데이터센터 사업의 가치를 따로 인정받는 동시에 성격이 다른 자본을 각각 유치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SK텔레콤은 8월27일 100%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를 인적분할해 존속회사 SK브로드밴드와 신설회사 SK호라이즌으로 나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SK브로드밴드의 사업 가운데 데이터센터와 해저케이블 기반 국제전용회선 사업을 별도로 떼어낸다.
올해 7월 AI 데이터센터 개발 전문회사 SK하이퍼를 세운 데 이어 SK호라이즌을 설립하면서 AI 데이터센터 사업에서의 역할분담이 보다 세분화됐다. SK텔레콤이 전략과 글로벌 고객 확보를 총괄하고, SK호라이즌이 기존 인프라의 운영과 확장을, SK하이퍼가 GW(기가와트)급 신규 사업 개발을 맡는 구조다.
법인 분리가 필요했던 이유는 자본 조달이 데이터센터 사업의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증권업계는 SK텔레콤이 5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확보하는 데만 75조 원에서 많게는 350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소요 자금은 자기자본 15조4950억 원 규모인 SK텔레콤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선다. 결국 이 자금을 안정적으로 끌어올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정 사장의 주요 과제였던 셈이다.
이에 데이터센터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떼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SK브로드밴드 안에 있는 IPTV와 케이블TV 등 기존 사업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데이터센터 사업은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성장 기울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성격이 다른 자산이 한 재무제표에 묶여 있으면 투자자가 값을 매기기 어려운 만큼, 이 사업을 별도로 분리해 시장의 가치 재평가를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재평가 결과는 곧바로 숫자로 확인됐다. SK텔레콤은 분할 결정과 동시에 글로벌 투자사 KKR, 국내 IMM인베스트먼트·스톤브릿지 컨소시엄과 3조800억 원 규모의 지분투자 본계약을 체결했다. 구주 2448만1427주를 1조8811억 원에 넘기고 신주 1561만7069주를 1조2천억 원에 발행하는 구조로, 구주와 신주 모두 주당 76839원이다.
이 거래를 기준으로 신은정 DB증권 연구원은 SK호라이즌의 초기 기업가치를 약 5조 원으로 산정했다. 분할계획서 기준 SK호라이즌의 장부 순자산은 4758억 원, 2025년 매출은 3477억 원이다. 장부 순자산의 10배, 매출의 14배를 웃도는 값이 매겨진 셈이다. 신주 납입까지 마치면 SK호라이즌의 기업가치는 6조 원대가 된다.
법인 분리는 가치 재평가뿐 아니라 투자되는 자본의 성격을 나누는 효과도 있다.
SK호라이즌은 서초·일산·분당·가산·센텀·양주·판교 등 이미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 8곳과 울산·구로에서 짓고 있는 시설을 합쳐 총 318MW(메가와트)를 넘겨받는다. 이미 운영되는 시설과 매출이 딸린 실체가 있는 자산이다.
이와 달리 SK하이퍼는 부지도 전력도 고객도 아직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회사다. 팔 지분이 없으니 SK텔레콤이 100%를 쥐고 2030년까지 7500억 원을 필요할 때마다 나눠 출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 건설과 보유·운영은 프로젝트별 특수목적법인(SPC)이 맡고, 자금은 재무적 투자자 지분투자와 프로젝트파이낸싱으로 조달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두 회사가 부담하는 위험의 종류도 달라진다. SK호라이즌은 가동률과 임대계약 같은 운영 리스크를, SK하이퍼는 부지와 전력계통 확보, 인허가, 수요 확보라는 개발 리스크를 부담하게 된다. 안정적 현금흐름을 원하는 인프라 자본과 개발 단계의 고위험을 감수하는 자본을 다른 그릇에 나눠 담은 것이다.
역할에 맞춰 경영진 배치도 갈렸다. SK호라이즌은 김성수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가 대표를 겸임하고, SK하이퍼는 7월 대표이사 직속으로 신설된 AI DC 통합추진단 단장을 맡은 정석근 SK텔레콤 AI CIC장이 초대 대표를 맡았다.
김건희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SK텔레콤의 이번 구조 재편을 두고 "신규 개발 기능과 기존 자산 운영 기능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함으로써, 사업 단계별 특성에 부합하는 의사결정 체계와 자금조달 구조를 확보하려는 취지로 판단된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