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 시흥의 SPC삼립 시화공장을 찾았다. 두 달 전 노동자가 생산설비에 끼여 숨진 사고가 발생한 뒤였다. 이 대통령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앞에 두고 “같은 현장에서 같은 방식의 사고가 반복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차라리 하소연에 가까웠다. 대통령은 불과 한달 반 전인 6월 초 취임했다.
갓 취임한 대통령의 읍소는 그러나 먹히지 않았다. 두 달 뒤인 지난해 9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가 6일 연속 야간근무를 마친 후 자택에서 숨졌다. 그리고 불과 반년 사이 같은 공장에서는 화재와 끼임 사고까지 이어졌다.
앞서 2022년에는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당시 사고로 강동석 SPL 대표는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안전관리와 사고 대응 문제에 대한 국회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국감에서 재발 방지와 경영진의 안전관리 책임이 도마에 오른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2023년 8월, SPC 계열사 샤니 성남공장 치즈케이크 생산라인에서는 또 다른 노동자가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숨졌다.
SPC그룹의 속내와 내부 안전 관리의 전모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현상엔, 정부에 대한 무시, 국회에 대한 경시가 배어 있다.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그들의 경시는 오래 됐다. 그리고 그들의 경영 문화에 깊숙하게 스며 있다.
‘산재와의 전쟁’을 국정 핵심 과제로 내건 이재명 정부가 집권 2년 차를 맞아 두 번째 국정감사를 앞뒀다. 대통령과 국회의 질타 이후에도 사고가 반복된 SPC그룹은 이번 국감에서 반복 산재를 막기 위한 정부의 감독과 대책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했는지를 검증할 대표적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왼쪽)이 2025년 7월 25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공장 노동환경 등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끼임’ 집중 관리에도 산재 사망 절반 이상
31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강하게 추진해 온 산업재해 예방 정책의 실효성이 주요 검증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7일 ‘2026 국정감사 이슈 분석: 정부가 답해야 할 올해의 질문’을 발표하고, ‘끼이고 떨어지는 후진국형 산재,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를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정부가 각종 산재 예방 대책을 내놨음에도 ‘떨어짐·끼임·부딪힘’ 등 이른바 ‘후진국형 3대 사고’가 여전히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605명 가운데 떨어짐·끼임·부딪힘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361명으로 전체의 59.7%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국회입법조사처는 반복 재해 이후 정부의 대응이 실제 현장을 바꿨는지를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책의 취지와 추진 계획뿐 아니라 실제 효과와 집행 과정의 책임, 정책의 한계까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SPC그룹은 대통령의 현장 질타와 국회의 문제 제기, 정부의 감독과 기업의 재발 방지 약속 이후에도 사고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국감의 질문을 가장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
◆ 집권 2년 차, ‘정책 성적표’ 받는 국감
특히 올해 국정감사는 제22대 국회 후반기 첫 국정감사이자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여를 맞아 그동안 추진해 온 국정과제의 성과와 한계를 본격적으로 검증받는 무대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고 계획을 제시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집행 결과가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국회가 따져 묻는 본격적 시험대라는 의미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올해 국감의 방향을 단순한 정책 현안 제시가 아닌 ‘정부가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을 던지는 데 뒀다. 정책의 취지와 추진 계획뿐 아니라 실제 효과와 집행 과정의 책임, 정책의 한계까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소규모 사업장과 산재 취약 노동자의 사고 예방에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재 취약 노동자의 사고 예방에 지원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지방자치단체·민간이 함께 예방에 나서고,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을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고 자체를 막는 구조로 산업현장의 안전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핵심 방향이다.
◆ 사과는 매년, 사고도 매년
SPC그룹은 2022년부터 해마다 국회의 검증 대상이 됐다. 2022년에는 강동석 SPL 대표이사·2023년에는 이강섭 샤니 대표이사가 현장 노동자 사망사고로 환경노동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출석했다. 2024년에는 황종현 SPC삼립 대표이사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고, 국감 과정에서는 SPC삼립과 SPC그룹의 식품위생법 위반 문제도 주요 국감 자료와 쟁점으로 제기됐다. 2025년에도 SPC삼립 시화공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도세호 SPC 대표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럼에도 SPC그룹 계열사의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피비파트너즈·파리크라상·비알코리아·SPC삼립·샤니·SPL 등 주요 6개 계열사에서는 2020년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997건의 산업재해 신청이 접수됐다. 월평균 15.6건꼴로, 이 가운데 926건이 승인됐다. 특히 SPL 제빵공장 노동자 사망사고로 안전관리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번진 2022년에는 산재 신청이 216건으로 조사 기간 중 가장 많았고, 2024년에도 157건이 접수됐다.
2026년에도 사고는 이어졌다. SPC삼립 시화생산센터에서는 4월 생산라인 작업 중 끼임 사고가 발생했고, 그 뒤 요양 기간이 법정 기준을 넘어서면서 중대재해로 공시됐다. 6월에는 생산라인 센서 정비 중 컨베이어 체인에 손이 끼여 노동자 2명이 다치는 중대재해도 발생했다. 국감의 질타와 안전 강화 약속, 경영진의 교체가 수년간 반복됐지만 현장의 사고 역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