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인 B는 끝까지 말썽이었습니다. B가 관리하던 계좌에 있던 두 사람의 동업자금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몇 달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습니다. A씨는 직접 법원에 가기로 합니다.
동업이 깨졌을 때, 법원에 가기전에 나 혼자 빠져나온 것인지, 남은 재산이 무엇인지, 상대방의 비협조를 뚫고 나갈 절차를 잘 알고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AI 이미지.
좌충우돌 길었던 소송이 끝나고, A씨는 판결문을 받았습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A씨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증거를 조작하지도 않았습니다. B가 동업자금을 쥐고 내놓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누가 옳은지를 따져 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순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위해 비유를 들겠습니다. 문이 세 개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동업을 끝내고 돈을 돌려받는 데는 정해진 순서가 있습니다.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문은 해산입니다.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접고, 이제부터는 재산을 정리하는 단계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하는 일입니다. 대법원의 표현을 빌리면, 목적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중지하고 조합재산을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은 청산입니다. 받을 돈을 받고, 갚을 돈을 갚고, 남은 재산이 얼마인지 확정하는 작업입니다. 동업자 전원이 함께 하거나, 청산인을 뽑아 맡깁니다.
세 번째 문이 비로소 잔여재산 분배, 즉 "내 몫을 달라"는 청구입니다.
싸움이 난 사람들은 대개 앞의 두 문을 그냥 지나칩니다. 억울하니까, 곧장 세 번째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깁니다. 그리고 열리지 않습니다.
법원의 논리는 냉정할 만큼 단순합니다. 나눠 줄 몫이 얼마인지는 청산이 끝나야 확정된다, 확정되지 않은 것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처리할 잔무가 남아 있는데도 청산을 건너뛰고 분배부터 청구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청구가 기각됩니다.
억울함은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닙니다.
"상대가 협조를 안 하는데 어쩌라고요“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당연히 이렇게 되물을 것입니다. 청산을 하려면 상대가 나와야 하는데, B 같은 사람이 순순히 나올 리 없지 않느냐고. 바로 그 사람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것 아니냐고.
지극히 정상적인 항변입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그 상식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일부 청산인이 협조하지 않아 청산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청산절차의 종결 없이 곧바로 잔여재산의 분배나 정산금의 지급을 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입니다.
상대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문을 건너뛸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버티는 상대를 끌어내는 것 자체가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됩니다. 청산인을 선임하고, 필요하면 법원의 힘을 빌려 절차를 밟아 나가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동업 분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더 억울한 사람이 아니라, 순서를 아는 사람입니다.
모든 동업이 세 개의 문을 지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대법원도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 것이죠.
먼저, 처리할 잔무가 없고 남은 일이 재산을 나누는 것뿐이라면 굳이 청산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습니다. 문이 세 개라도 이미 열려 있으면 그냥 통과하라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더 중요한 예외가 있습니다. 동업자가 둘뿐인 경우입니다. 지난 칼럼에서 본 것처럼 두 사람이 하던 동업에서 한 명이 나가면, 조합 관계는 끝나지만 원칙적으로 해산도 청산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남은 한 사람이 사업을 그대로 안고 가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가는 사람이 갖는 권리는 잔여재산 분배 청구가 아니라 지분반환청구입니다.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구별되는 별개의 권리입니다.
같은 "내 돈 돌려줘"라도, 동업이 통째로 끝난 것인지 나 혼자 빠져나온 것인지에 따라 들고 가야 할 무기가 다릅니다. A씨가 정말로 물었어야 할 첫 질문은 "B가 나쁜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나온 것인가, 사업이 끝난 것인가"였습니다.
소송에 들어가기에 앞서
동업이 깨졌을 때, 법원에 가기 전에 세 가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첫째, 나는 나온 것인가, 사업이 끝난 것인가. 나 혼자 빠져나온 것이라면 지분반환, 동업 자체가 문을 닫은 것이라면 잔여재산 분배입니다. 첫걸음부터 다른 길입니다.
둘째, 남은 재산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가. 정산의 기준은 감정이 상한 날이 아니라 관계가 끝난 날의 장부입니다. 그날의 통장, 계약서, 재고, 미수금이 뒷날의 증거가 됩니다.
셋째, 상대의 비협조를 뚫고 갈 절차를 알고 있는가. 상대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순서를 건너뛸 면허가 아닙니다.
동업을 시작할 때 계약서가 소화기라면, 동업을 끝낼 때 필요한 것은 지도입니다. 불이 났을 때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모르면, 소화기를 들고도 어디로도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 김승현 변호사는 법무법인 선인 파트너 변호사다. 한양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거제시에서 행정법률 자문 공무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소송 현장을 누비며 법적 문제를 해결해 왔다. ‘승변’은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뜻에서 그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복잡한 법전 속에 갇힌 법률 상식이 아니라, 당장 내 삶을 지켜주는 유용한 생활 법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