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결국 '독자 AI(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프로젝트 2차 단계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참가팀 점수와 순위가 낱낱이 드러났다. 하지만 왜 여전히 안개가 걷힌 느낌은 들지 않을까.
SK텔레콤이 70.6점, 업스테이지가 69.9점, LG AI연구원이 69.0점으로 각각 1·2·3등을 차지한 것은 알겠다. 모티프테크놀로지스는 65.8점이니 가장 낮은 점수를 탈락시키는 현재 평가 시스템 아래에서는 물론 모티프가 탈락하는 것이 맞다.
사진은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25년 12월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에서 환영사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과기정통부는 탈락팀이 공개 이의제기한 날 바로 전체 점수표를 공개했다. 전문가 위원 10명과 전문 사용자 49명, 일반국민 185명의 채점표도 그대로 보여줬다. 객관식 답안지 같은 숫자들이 7장에 걸쳐 의미 없이 나열돼 있었다.
성급하게 불려 나온 이 숫자들은 독파모 프로젝트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점수표가 공개되면서 무슨 올림픽 경기마냥 메달을 딴 팀과 못 딴 팀으로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고, 정부가 한사코 피했던 '서바이벌' 프레임은 더욱 뚜렷해졌다.
서바이벌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정부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생존게임 형태의 경쟁은 오히려 불가피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걸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 기억 상실에 걸린 것처럼, 도대체 우리 기업들이 왜 정부가 만든 판에서 AI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인지는 모두 잊어버린 것 같다.
'독자 AI'라는 프로젝트 이름처럼, 정부가 이번 판을 꾸린 목적은 '소버린 AI' 육성이다. AI가 물이나 에너지처럼 필수 인프라가 되는 시대를 대비해, 외부 의존도를 낮추고 우리가 남의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AI 인프라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독파모 2차 단계평가에서는 소버린 AI에 관한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게임의 원래 목적이 잊히면서 껍데기뿐인 순위 다툼만 남았다. 1차 단계평가에서도 평가 공정성 논란이 있었지만, 초점이 '독자성'에 맞춰지면서 경쟁의 본래 목적인 '독자 AI'가 무엇인지 다함께 논의하는 기회는 마련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된다.
1차 단계평가 때의 논란을 너무 의식해서인지 과기정통부는 이번 2차 단계평가 때 아예 독자성에 관한 언급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차 때 벌어진 독자성 논란의 함의를 파악했다면 이번에는 소버린 AI의 자질이 과연 무엇인지 국민과 더 심층적으로 논의하고 보다 진전된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했다.
소버린 AI라는 경쟁의 알맹이가 빠지자 '기술 점수가 높은 팀이 왜 떨어졌나' 같은 소모적 판정 시비로 모든 논의가 몰렸다. 과기정통부도 경쟁 취지에 대해 "한국 AI의 경쟁력을 높이려 한다"는 식의 추상적 설명에 머무르면서, 소버린 AI의 개념과 기준을 국민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정부가 소버린 AI 논의를 회피한 결과 참가팀은 고작 정부의 그래픽처리장치(GPU) 1천 장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GPU라는 물리적 자원은 정부가 기업들에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유인이 될 순 없다. 기업들이 정부의 GPU 배급이 없어서 AI 개발을 못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GPU 자원을 풍부하게 확보하려면 오히려 1차 때 탈락한 네이버처럼 엔비디아와 직접 손을 잡는 것이 더 빠르다. 기업들이 알아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데, 굳이 국가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소버린 AI는 정부가 기업들의 AI 경쟁에 개입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명분이다. 소버린 AI에 관한 국민적 합의는 정부만이 이끌어낼 수 있고, 이는 기업들이 결코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자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