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랜드 캐니언에서 지난 주말 발생한 급류 홍수로 최소 2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실종됐다. 매년 내리던 폭우가 왜 이번엔 큰 인명피해로 이어졌을까.
이번에 내린 집중호우에 앞서 태평양 수온이 올라갔고, 해당 지역이 장기간 가뭄과 산불로 시달렸던 점이 이번 기후 재앙을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테면 여러 기후재난이 겹치면 '일상적' 폭우도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 캐니언. ⓒAP=연합뉴스
8월31일(현지시각) 가디언 보도를 보면, 전날인 30일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내 브라이트 앤젤 크릭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급류 홍수'가 발생해 최소 2명이 숨지고 15명이 실종되거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랜드 캐니언에서는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몬순 기간 집중호우로 인한 급류 홍수가 발생한다. 특히 바위투성이의 깊은 협곡 지형은 빗물을 빠르게 한곳으로 모아 폭우를 순식간에 거대한 물벽으로 바꾼다.
특히 북쪽 사면에서 발원해 콜로라도강으로 떨어지는 협곡은 최대 약 6천 피트(약 1800m)에 이르는 고도 차를 가진 급경사 수로로 급변한다. 협곡 지형은 빗물을 좁은 통로로 집중시키고 물의 흐름을 곧바로 가속도가 붙는다. 평지라면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넓게 분산될 빗물도 바위벽과 협곡 바닥을 따라 순식간에 아래로 쓸려 내려가면서 강력한 급발 홍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매년 몬순 기간 반복되는 집중호우가 급류 홍수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이번 폭우에 더 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폭우는 애리조나 몬순철의 대류성 뇌우가 남서풍 상층 흐름을 타고 그랜드 캐니언 쪽으로 수분을 집중시킨 상황에서 발생했는데, 태평양 해수면 온도 상승과 가뭄·열돔 등 기후 요인이 대기 중 수분량을 평년보다 5~15% 높였다.
이처럼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운반할 수 있게 되어 뇌우가 터지면 '더 많은 물'을 짧은 시간에 쏟아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애리조나주 노스 림과 브라이트 앤젤 크릭 인근 기상 관측소에 따르면 지난 30일 그랜드 캐니언 홍수 위험 지역 인근에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 동안 1.24인치(31mm)의 비가 내렸다고 한다.
집중호우가 지난해 대형 산불인 '드래곤 브라보 산불' 피해 지역 일부를 덮친 점도 주목된다. 산불 이후 식생이 사라진 지역에서는 빗물이 토양에 충분히 스며들지 못해 지표면을 따라 빠르게 흘러내린다. 다만 산불 피해가 이번 홍수의 피해 규모를 얼마나 키웠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연방정부 분석에서는 산불 이후 브라이트 앤젤 크릭 일대, 물에 섞인 흙, 돌, 암석, 나뭇가지 등이 쓸려 내려가는 토석류 위험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 내무부 산하 평가팀은 일부 상류 지역의 토석류 위험이 기존보다 2~8배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기간 이어진 가뭄 역시 홍수 위험을 키웠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건조하고 식생이 부족한 토양은 갑작스러운 폭우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뭄과 이번 홍수의 직접적인 인과관계 역시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미국 서부 지역의 단기간 집중호우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는 주목하고 있다. 다니엘 스웨인 연구팀은 최근 연구에서 미국 서부의 여름철 단기간 집중호우 강도가 2000년 이후 약 10%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가뭄과 산불, 집중호우 등 서로 다른 극단적 기상 현상이 연이어 발생하거나 겹치는 '복합 극한 현상'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번 그랜드 캐니언 참사 역시 개별 요인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위험 요인이 중첩될 경우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