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권가에서 제약·바이오 기업의 목표주가를 더욱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도 제약·바이오 기업의 공시와 관련해 더욱 엄격한 기준을 내놓았다.
이는 4월 발생한 ‘삼천당제약 사태’ 등이 촉발한 주주들의 불신이 증권사의 태도 변화와 정부의 조치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에서 시장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한 증권사의 평가가 까다로워졌다는 내용의 이미지를 생성해 달라는 요구에 챗지피티가 생성한 이미지 ⓒ AI
10일 제약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증권사들은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를 더 엄격하게 평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기업의 주가를 평가하는 멀티플(밸류에이션 배수)을 바꾸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기업의 목표주가는 미래 이익 전망과 그 이익에 적용하는 멀티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실적 전망이 그대로라도 시장이 성장성을 보수적으로 평가하면 목표 멀티플이 낮아지고 목표주가도 내려간다.
예컨대, 미래에셋증권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7월27일자 보고서에서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업계 전반 밸류에이션 하락으로 타깃 멀티플을 기존 35배에서 33배로 조정했다”면서 목표주가를 기존 230만 원에서 210만 원으로 낮췄다. 미래에셋증권의 삼성바이오로직스 타깃 멀티플은 글로벌 CDMO 기업인 ‘론자’의 최근 5개년 평균 EV/EBITDA에 프리미엄 50%를 적용한 수치다.
SK증권은 유한양행에 대한 3일자 보고서에서 회사의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목표가를 기존 16만 원에서 12만 5천 원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최근 제약·바이오 업종의 투자심리 악화를 반영해 목표 멀티플을 기존 27배에서 20배로 낮췄다”고 밝혔다. SK증권은 미국에서 신약을 판매 중인 국내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의 12개월 선행 평균 EV/EBITDA를 유한양행의 멀티플로 삼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7월22일자 GC녹십자 분석 보고서에서 3분기 이후 전망을 밝게 보면서도 “국내 제약·바이오 피어 그룹의 주가 하락에 따라 적용 멀티플(EV/EBITDA)을 조정해 목표주가를 기존 22만 원에서 18만 원으로 하향한다”고 평가했다.
키움증권은 6일자 SK바이오팜 분석 보고서에서 “동사에 대한 가치평가를 기존 DCF(현금흐름할인법)에서 타깃 밸류에이션(상위 제약사 12개월 선행 평균 PER)으로 변경해 목표주가를 기존 14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하향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 회사를 미래에 성공할 신약을 개발하는 초기 바이오기업이 아니라 현재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제약사로서 더 엄격하게 평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비교기업의 평균 PER을 적용 멀티플로 사용해 목표가를 낮췄다.
위 예시들의 공통점은 분석 대상 기업들이 모두 우수한 실적을 발표했거나 향후 실적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분기 실적이 증권사 컨센서스에 부합했고, 2026년 실적도 목표치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따라서 이들 예시는 주식시장에서 제약·바이오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는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증권사들의 이 같은 방향 전환을 두고 ‘스토리’보다는 ‘증거’를 중시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즉 과거에는 좋은 기술이나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경우 이를 근거로 기업가치를 가산 평가했다면, 지금은 임상 데이터나 기술수출 계약, 실제 매출과 이익 등 구체적인 사례가 검증돼야만 목표주가 산정에 실제로 반영한다는 뜻이다.
이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현재 주가에 미래 가능성에 따른 밸류에이션이 이미 반영돼 있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즉 현재 파이프라인의 임상 성공과 허가, 기술수출 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기 반영돼 이미 주가가 올랐고, 향후 추가 상승은 실제로 드러나는 성과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엄격한 추세에 따라, 실제로 기업의 펀더멘털에 큰 영향이 없는 이슈에 목표주가를 낮추는 사례도 포착됐다. 예컨대 유한양행의 경우 ‘렉라자’의 유럽 마일스톤 인식 시점이 1분기에서 2분기로 늦춰졌다는 이유로 목표주가가 내려가기도 했다.
반대로 확실한 성과에는 멀티플을 상향 조정한 사례도 있었다. 한미약품이 대표적인 경우로, KB증권은 한미약품이 5월 일라이 릴리에 단장증후군(SBS) 치료제 신약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를 총 1조8973억 원(계약금 1129억 원)에 기술수출하자 12개월 선행 PER 타깃 멀티플을 상향 조정하며 목표주가를 올렸다.
요컨대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임상 중인 파이프라인의 경우 경쟁약 또는 기존 제품 대비 우월한 데이터를 제시하거나 △실제 회수 가능한 숫자(계약금·마일스톤·로열티 등)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기술수출을 끌어내거나 △신약의 경우 기존 회사의 펀더멘털을 개선할 만한 매출과 이익을 지속해서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요구받고 있다.
◆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신뢰 회복
이 같은 분위기의 배경을 두고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시장의 신뢰를 상당 부분 잃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자사 기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거나 기술수출 최대 계약 규모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띄우는 사례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2026년 3~4월 삼천당제약의 사례다. 삼천당제약은 3월 대표이사가 자신의 보유주식 처분 계획을 발표한 후 빅파마와의 협상을 언급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유럽 및 미국 라이선스 계약을 발표하면서 세부 계약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최대 계약 규모만 강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핵심 기술이라고 볼 수 있는 ‘에스패스’ 플랫폼의 특허가 대만 기업으로 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특허권 소유 여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회사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에스패스는 단백질 또는 펩타이드 약을 먹는 알약으로 바꾸는 자체 경구용 플랫폼이다. 다만 삼천당제약은 4월 특허권을 직접 자사 명의로 취득·이전하는 절차를 완료하면서 관련 의혹을 해소했다.
삼천당제약 사례는 정부가 직접 나서는 계기가 됐다. 금융감독원은 4월부터 6월까지 외부 자문위원과 업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7월30일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방안’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제약·바이오 기업은 ‘IPO 증권신고서’를 통해 파이프라인의 예상 시장 규모, 임상시험 성공 확률, 허가·심사 리스크, 개발기간 및 소요 비용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또 기술이전 계약 공시에서는 전체 계약 규모 대신 △계약금 △개발 마일스톤 △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를 각각 구분해 공개해야 한다.
이번 개선방안에는 ‘제약·바이오 언론보도 가이드라인’도 포함됐다. 가이드라인은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는 반드시 공시를 통해 먼저 공개하고 △보도자료에는 공시되지 않았거나 공시 내용과 다른 중요 정보를 담지 않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