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2025년 8월6일. 이재명 대통령은 잇따라 발생한 산업재해를 놓고 해당 기업에 ‘면허취소’라는 초강수까지 언급하며 강력히 질타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국내 산업계에 던진 첫 화두이기도 하다.
최고 권력자의 서슬 퍼런 경고에 산업계는 바짝 긴장했고,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표이사 명의의 공식 사과문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속적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강한 행정을 요구했고, 중대재해를 척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 2021년 2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 당시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는 잇따른 중대재해의 원인을 묻는 질의에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불완전한 상태와 작업자의 행동에 따라 많이 일어난다”고 답했다.
한영석 대표는 불성실한 답변이라는 지적에 “말솜씨가 부족해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진이 산재 책임을 시스템과 함께 현장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이 발언은 산업계가 고수해 온 안전 의식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왼쪽)과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이 조선업계 중대재해의 비극을 없앨 수 있을까. ⓒHD현대 및 한화
두 장면은 한국 산업 현장의 안전 문제가 지닌 '구조적 성격'를 보여준다.
우선 정부 관여의 물리적 한계를 짚을 수 있다. 산적한 거시경제 위기와 굵직한 정치·외교 현안 속에서 정부와 권력이 365일 산업현장을 향한 감시망을 강화하기 쉽지 않다. 안전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간헐적으로 내놓는 호통만으로는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
실제 1년 전 대통령의 호통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자는 253명으로 2025년 상반기보다 34명, 11.8%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2022년 통계 작성 이후 상반기 기준 가장 큰 감소폭이라고 평가했지만, 25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전문경영인의 한계도 명확하다. 한 전 대표의 발언은 당장 그해 수주목표와 납기일, 실적에 자신의 처우가 달린 전문경영인에게 안전은 언제든 타협 가능한 변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장기적 투자와 의식 개선이 동반돼야 할 안전 시스템 강화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영역이다.
대통령의 감시는 영원할 수 없고 전문경영인은 단기 실적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끊어낼 주체는 현장 노동자와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며 기업의 장기적 명운을 쥐고 있는 최고 의사결정권자, 오너경영인이다.
특히 지금은 국내 제조업의 미래를 대표하는 젊은 오너들이 하나둘 전면에 등장했고 이들은 단순히 실적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향후 20~30년 기업 문화와 투자 방향을 결정할 위치에 서 있다.
'안전' 역시 그들이 어떤 기업을 만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핵심 경영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K-조선 슈퍼사이클의 양대 축을 이끌면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전면에 나선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이들이 직접 등판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두 사람이 그리는 장밋빛 미래와 모순되게 현장의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국내 산업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그룹의 미래를 다시 그리고 있다. 본업에서는 도크를 가득 채우고 있고 최첨단 산업으로 발을 넓히고 있으며 스마트 야드를 외치며 화려한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국내 구축함 사업에서는 서로 경쟁하고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는 힘을 모으며 업계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납기를 맞추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중대재해 리스크가 집중되고 있다. 기업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데 사업장에서는 과거형 안전사고와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업 경쟁력을 갖춘 두 기업 현장에서는 2026년에도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멈추지 않았다. 이런 괴리를 방치하고 미래를 그리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받아들이고, 단기 실적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작업 방식을 근본부터 바꾸는 결단, 하청 중심의 구조적 리스크를 해소하고 위험이 확인되면 생산보다 자발적으로 작업을 중지하는 결단, 그리고 이런 문화를 뿌리내리는 일은 오직 오너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40대 중반에 재계 순위 10위 이내 거대 기업집단을 이끄는 젊은 오너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마무리됐다. 이제는 성장에만 매몰돼 현장의 희생을 묵인했던 이전 세대의 구태와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할 시점이다.
두 오너가 미래 세대에 남겨야 할 유산은 더 많은 수주가 아니라 누구도 일하다 목숨을 잃지 않는 안전한 조선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