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사이클로스포라(단세포 기생충) 식중독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 사태를 계기로 기후변화가 식중독균과 기생충의 번식 및 전파를 촉진한다는 경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마다 약 6억 명이 오염된 음식으로 병에 든다고 추산하는데, 과학자들은 기온상승과 극단적 강우 및 가뭄이 이 수치를 더 끌어올릴 것으로 바라본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상승이 식중독균과 기생충 감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온다. AI이미지.
5일 AP통신을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미시간 주에서 최근 사이클로스포라 감염으로 사망자가 처음으로 발생했다. 이번에 숨진 환자는 모두 2명으로 모두 평소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클로스포라는 주로 분변 등으로 오염된 물이나 과일, 채소를 섭취했을 때 감염되는 대표적 수인성 장질환이다. 약 7일의 잠복기를 거친 뒤 심한 설사와 식욕부진 또는 미열이나 구토를 동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이클로스포라 식중독 사태는 올해 6월 말부터 미국 중서부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미시간주와 오하이오주 등에서 사이클로스포라 환자가 7월 중순에만 1600명 넘게 보고됐고, 잠재적 감염자는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보건당국은 멕시코 중부에서 생산된 채 썬 양상추를 감염원으로 지목해왔는데, 미국 식품의약국은 이 양상추 표본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위양성(잘못된 결과)'라며 철회하는 혼선을 빚었다.
그럼에도 미국 식품의약국은 "역학적 증거와 발병 데이터는 여전히 멕시코 중부 농업기업 테일러 팜스가 생산한 양상추를 가리킨다"고 밝히며 리콜과 조사 방침을 유지했다.
이처럼 정확한 오염경로조차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식중독 확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럿거스대학교 식품미생물학자인 돈 샤프너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사이클로스포라는 봄과 여름에 왕성하게 증식하는데, 기온이 높아지면 번식가능 기간자체가 길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같은 맥락에서 피터 친홍 UCSF 감염내과 전문의는 7월16일 미국 비영리매체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와 나눈 인터뷰에서 "열은 기생충을 활성화시킨다"며 "최근 온도가 올라가면서 원래 사이클로스포라가 없던 지역에서도 감염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문제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와 식중독을 비롯한 질병의 연관성은 사이클로스포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식중독 원인균의 하나인 살모넬라균은 섭씨 32~37도라는 높은 온도에서 가장 빠르게 증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모넬라균과 관련해서는 화씨 1도가 오를 때 마다 감연건수가 늘어나는 상관관계를 규명한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대규모 기생충 감염 사태와 관련된 농산물 공급업체 테일러팜스. ⓒ AFP통신=연합뉴스
병원체가 이렇게 다방면에서 확산하는 사이 정작 이를 막아야 하는 미국 공중보건 시스템은 신뢰문제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이 확진검사가 끝나기 전에 사이클로스포라 양성판정을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돈 샤프너 럿거스대학교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미국 식품의약국은 이제 체면을 구겼고,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상황이다"고 꼬집었다.
수전 메인 예일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도 같은 매체에 "이번 번복이 미국 식품의약국의 신뢰성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우려된다"며 "그런 중대한 결정을 뒤집는 것은 분명 의구심을 자아낸다"고 말했다.
이번 사이클로스포라 식중독 확산 문제는 지구온난화 문제뿐만 아니라 감시체계의 구조적 문제까지 겹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30년 가까이 운영해온 식중독 감시망 '푸드넷'을 2025년 축소해 살모넬라와 대장균을 제외한 사이클로스포라와 비브리오 등 6종의 병원체의 보고를 의무에서 자율로 바꿨다. 이 변화는 별도 발표 없이 조용히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전 메인 박사는 "이런 예산과 인력 및 제도 축소는 수십 년간 이어진 만성적 과소투자의 결과로 이번 식중독 사태가 일어나는데 일조한 것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