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가 유일하게 가동하던 팍스 원자력 발전소를 1980년대 가동을 시작한 뒤 44년 만에 처음으로 멈춰 세웠다.
이번 가동중단의 원인은 단순한 설비고장이 아니라 다뉴브 강 수위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 자체가 부족한 데 따른 것이다. 폐기물 처리 문제로만 논의되던 원자력 발전의 약점이 이제는 기후위기가 초래한 '물부족'이라는 새로운 약점을 만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헝가리 다뉴브강 앞 팍스 원자력발전소. ⓒ AFP통신=연합뉴스
3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유로뉴스 등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머저르 페테르 헝가리 총리는 영상메시지를 통해 "헝가리는 가장 중요한 5일을 앞두고 있다"며 "팍스 원자력 발전소가 곧 가동을 멈출 것이다"고 밝혔다.
페테르 헝가리 총리는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치솟을 만큼 무더운 날씨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헝가리의 전력시스템과 공공시설, 사회 전반에 걸쳐 모두가 엄청난 부담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팍스 원자력발전소는 헝가리 전력의 최대 40%를 담당하는 2기가와트(GW) 규모의 원전이다.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곳에 있다.
팍스 원자력발전소는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를 다뉴브 강에서 끌어다 쓰고 있는데, 다뉴브강의 수위는 최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잇단 폭염과 가뭄이 원인으로 최근 수위는 23cm를 기록해 2018년 기록한 직전 최저수준인 33cm를 훨씬 밑돌았다.
원자로는 물 없이 버티지 못한다
원자력 발전은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식혀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 냉각과정에는 강물이나 바닷물이 대량으로 필요한데, 팍스 원자력발전소는 인근 다뉴브 강에서만 냉각수를 끌어 쓰도록 설계 돼 있다.
원자로 4기를 식히는데 필요한 물의 양은 초당 100㎥에 이르지만 최근 다뉴브 강의 수위가 23cm까지 떨어지면서 취수펌프의 흡입구가 물에 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른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단순히 물이 '적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냉각에 사용한 뒤 강으로 다시 흘려보내는 물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하천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갈수기(한 해 동안 강물이 가장 적은 시기)에는 방류 자체가 제한된다. 결국 취수량 부족과 방류 제한이 겹치면서 원전이 멈출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기후위기가 드러낸 원자력의 지리적 약점
이번 사태는 헝가리만의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같은 다뉴브 강을 냉각수원으로 쓰는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자력발전소도 가동중단 위기에 놓였고, 세르비아는 수력발전량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라인강 수위마저 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독일의 물류와 제조업까지 타격을 받을 위기에 놓여있다.
프랑스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폭염기에 하천 수온상승과 수량부족으로 원자로 가동을 줄인 전례가 있어서 강물 냉각방식에 의존하는 유럽 원전 전반이 구조적으로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원자력 발전의 약점을 논할 때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나 사고 위험이 주로 거론됐다.
그러나 이번 팍스 원전 사태는 기후위기로 가뭄과 폭염이 일상화하면서, 내륙 하천에 냉각수를 의존하는 원전의 입지 자체가 새로운 취약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헝가리 정부는 팍스 원전이 몇 주간 멈출 수 있다고 보고 산업계에 전력 소비 감축을 요청하는 한편, 출퇴근 시간대 화물열차 운행 중단과 공공시설 조명 소등 등 비상 절전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