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코첼라(미국 최대 규모의 음악축제)’를 꿈꾸는 대형 K-컬처 축제 ‘패노메논’은 K-컬처 확산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팬들의 자발적인 문화를 상품화하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될까.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2027년 패노메논 추진계획 발표'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박 프로듀서는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
2027년 12월2일부터 12일까지 11일간 서울아레나와 고양 킨텍스에서 대형 K-컬처 축제 ‘패노메논’(Fanomenon)이 열린다. K-팝을 포함해 국내외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오르고, 팬덤을 대상으로 한 시상식도 펼쳐진다. 또한,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비롯해 푸드, 뷰티, 패션 등 K-컬처 전반을 아우르는 이벤트와 전시 행사, 팬 미팅도 곳곳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는 27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7 패노메논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패노메논’은 팬(Fan)과 현상(Phenomenon)을 합친 단어로, ‘팬들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의미한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오른쪽)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2027년 패노메논 추진계획 발표'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
2027년부터 매년 12월 ‘패노메논’ 시상식이 정례적으로 열리며, 2028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시작으로 봄마다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K-팝 축제 ‘패노메논 페스티벌’도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27년 이 행사를 통해 총방문객 52만 명, 외래 관광객 20만 명을 유치하고 약 1조 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팬을 위한 축제인가, 팬을 활용한 산업인가
축제의 핵심 주체로 내세운 K-팝 팬덤의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 가장 큰 쟁점은 자발적으로 형성된 팬덤 문화가 정부와 기업 주도로 지나치게 산업화·상품화되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팬덤은 특정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과 응원을 바탕으로 팬들이 스스로 만들어온 문화 공동체다. 팬덤을 하나의 산업 자원으로 바라보고 영향력을 수치화하거나 시상 대상으로 삼는 순간, 팬들의 자발성과 연대가 경쟁과 소비의 논리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패노메논의 핵심 콘텐츠인 팬덤 시상식의 심사 기준과 운영 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팬덤의 영향력을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지, 투표와 소비 활동이 얼마나 반영되는지, 국가별 팬덤을 어떤 기준으로 비교할 것인지 등 핵심적인 질문에는 답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또 하나의 팬덤 시상식을 만드는 것이 과연 팬 문화를 존중하는 방식인지, 아니면 팬들의 열정과 경쟁심을 산업적 가치로 환산하는 장치인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돈 되는 팬덤, 또 다른 축제가 필요한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공동위원장을 맡은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우려는 이미 K팝 산업이 팬덤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비즈니스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커진다. 현재 하이브·SM·JYP·YG 등 대형 기획사들은 자체 팬덤 플랫폼을 통해 유료 멤버십과 라이브 콘텐츠, 굿즈 판매, 팬클럽 서비스 등을 운영하며 팬덤 기반의 수익 모델을 구축해왔다. 여기에 정부가 주도하는 대형 축제와 팬덤 시상식까지 더해질 경우, 팬들의 참여와 소비를 확대하는 또 하나의 플랫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국내에는 이미 국내에는 마마 어워즈(MAMA AWARDS), 골든디스크어워즈, 멜론뮤직어워드, 서울가요대상, 더팩트 뮤직 어워즈, 한터뮤직어워즈 등 주요 K-팝 시상식이 연중 이어지고 있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상을 받도록 투표에 참여하고, 음원을 반복 재생하며,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고, SNS 홍보와 스트리밍 인증까지 이어간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위한 자발적인 응원이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산업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공짜 노동'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팬덤에 또 다른 상을 만들고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팬을 위한 정책인지, 산업을 위한 정책인지 되묻게 된다는 것이다.
대기업 중심 축제, 중소 기획사는 설 자리가 있나
정부가 이미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는 대형 기획사 중심의 산업 구조를 더욱 뒷받침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이브·SM·JYP·YG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과 손잡고 추진하는 만큼, 결과적으로는 대기업 중심의 팬덤 산업을 확대하는 데 세금과 행정력이 투입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획사와 신인 아티스트,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는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K-컬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대규모 공연장과 이벤트를 늘리는 것보다 창작자 지원과 중소 기획사 생태계 육성, 콘텐츠 제작 환경 개선, 아티스트 노동 환경 개선 등 문화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패노메논이 '팬들이 만들어가는 문화 축제'라는 취지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팬덤을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팬들의 자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K컬처 생태계 전체의 성장을 이끌 수 있을지, 그리고 팬을 산업의 동력으로만 소비하지 않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지가 패노메논의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