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정부가 시장친화적 개혁조치를 담은 '비상경제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60여년간 고수해온 사회주의 경제노선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국영기업의 개방, 민간기업 확대, 외국인 투자유치를 뼈대로 하는 이번 개혁은 1959년 쿠바혁명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이후 최대 규모의 경제실험으로 평가된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 ⓒ EPA=연합뉴스
다만 미국의 전방위 제재와 누적된 경제난이라는 '이중의 벽' 앞에서 이번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시선이 나온다.
마누엘 마레로 쿠바 총리는 18일(현지시각) 쿠바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권력회의에서 23개 경제부문을 아우르는 176개 시장 자유화조치를 제출하고 법제화 절차에 들어갔다.
쿠바 아바나 도시 전경. ⓒ 로이터=연합뉴스
구체적으로 이번 개혁안에는 직원 100인 이상의 사기업 설립을 허용하고, 국영기업의 지분거래를 개방하며, 오랫동안 서민생활을 지탱해온 기본 배급제 보조금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쿠바 정부는 이번 개혁이 중국과 베트남처럼 '사회주의 체제는 유지하되 경제는 시장화' 하는 방향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혁정책의 배경에는 쿠바의 절박한 경제현실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쿠바는 2021년 화폐개혁 실패 뒤 물가가 10배 이상 폭등했다. 2021년 이후에는 약 100만 명이 해외로 떠나면서 쿠바인구의 약 10%가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바 비정부기구 쿠바분쟁관측소(OCC)에 따르면 2026년 3월 기준으로 한 달 사이 경제난과 물자부족, 연료난을 이유로 전국에서 1245건의 시위가 발생해 역대 최다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최근 쿠바 전원회의에서 미국의 경제봉쇄에 더해 쿠바의 오랜 관료주의와 규제가 쿠바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면서 고강도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전원회의 폐막 연설에서 "쿠바의 현재상황은 필수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삶이 힘들 때 공산당과 정부의 책임은 위기를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쿠바는 경제개혁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1년 소련 붕괴 뒤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관광사업을 외화벌이 창구로 개방했고, 2011년에는 311개 개혁조치를 채택해 국영인력의 10%에 해당하는 약 50만 명의 감축을 시도했다.
2018년에는 헌법을 개정해 사유재산과 자유시장 경제를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제재, 제도 인프라 부재, 코로나19 감염병 충격이 겹치면서 개혁의 효과는 번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쿠바가 이번에 추진하는 대대적 개혁에는 미국의 태도가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025년부터 쿠바를 향한 제재를 강화해 미국인의 쿠바여행을 금지하고, 쿠바에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에 최대 30%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에너지 봉쇄를 단행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6월4일에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을 포함한 쿠바 권력 수뇌부 전체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6월4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쿠바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쿠바 이민자 출신인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쿠바를 향한 강경책을 직접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단기간에 미국의 태도가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이번 개혁의 성패는 쿠바 정부의 실행의지 뿐만 아니라 미국이 협상공간을 열어줄지에 달려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