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할 때마다 여권과 행정부 인사들이 배웅 또는 마중을 나간다. 그런데 공항에 누가 나왔는지, 누가 빠졌는지는 단순한 의전 문제가 아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8박10일간의 유럽 순방을 마치고 18일 귀국하자, 이번 귀국길에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함께 공황 마중을 나왔다. 출국 당시 정 대표가 배웅 자리에 빠지면서 '정청래 패싱' 논란이 불거졌던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18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환영 나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 내외와 참모진이 탄 대통령 전용기는 이날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 정청래 민주당 대표,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홍익표 정무수석이 순으로 공항에 나와 이 대통령을 맞았다.
9일 출국길에는 없던 장면이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정청래 대표를 공항 환송 인사에서 배제한 채 김민석 총리의 배웅을 받으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길에 오를 때 여당 지도부의 배웅을 받는 것은 오랜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순방에서 당 지도부가 배웅자 명단에서 빠진 데다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민석 총리가 등장하면 강력한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이 대통령이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 총리를 밀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항 배웅 또는 마중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항은 오래전부터 당청 관계의 온도를 드러내는 정치적 무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9월 유엔총회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했다. 그런데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였던 김무성 전 대표는 공항에 나오지 않았고, 원유철 원내대표만 환송에 나섰다.
당시 김 대표와 친박계는 이듬해 열리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놓고 거센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당청 불화설은 김무성 대표의 '공항 빈자리 사건'을 계기로 더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당시 김 대표는 환송뿐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귀국길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정이 있어서 못 간 것뿐"이라는 원론적인 해명을 내놨지만, 정치권은 이를 단순한 불참으로 읽지 않았다.
논란은 같은 해 12월에도 이어졌다. 김무성 대표는 프랑스·체코 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을 맞아 "외교 일정에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여기서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3초 남짓한 순간만 오갔다.
프랑스와 체코 방문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2015년 12월5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환영나온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바로 옆에 서있던 원유철 원내대표와 35초간 손을 맞잡고 대화를 나눴다. 국회 현안 처리부터 박 전 대통령이 순방 중이던 기간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국회 통과까지 이야기가 오갔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원 원내대표와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두고, 원 원내대표가 '원조 친박'인 김무성 대표를 누르고 '신(新)박'으로 떠올랐다는 말도 나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 때도 공항은 당정 관계의 온도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갈등의 불씨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4년 1월 취임한 직후부터 이어졌다. 한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던 김경률 당시 비상대책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김 여사 리스크'로 국민 감정이 더 나빠졌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윤 전 대통령이 강하게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맨 오른쪽)이 2024년 9월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체코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며 마중 나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왼쪽 세번째)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항 장면도 이런 불협화음의 연장선으로 해석됐다. 윤 전 대통령이 2024년 9월 체코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는 약 20초간 대화를 나눴지만 한 전 대표와는 1초가량의 짧은 악수만 나눴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추측이 나왔다.
갈등은 더 깊어졌다. 같은 해 10월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필리핀·싱가포르·라오스 순방길 환송 행사에 불참했고,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만 참석했다. 당정 불화설이 더는 부인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