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국 이란 전쟁이 끝났지만 에너지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구 차원의 탄소 규제는 강화될 일만 남았다. 대한민국 제조업은 기후 위기 속에서 '생존'이란 화두를 떠올린다. '한국형 녹색 대전환(K-GX)'은 생존을 위한 목숨줄이다. 그러나 제도는 미흡하고, 관심은 부족하다. 허프포스트코리아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공동 개최하는 '2026 기후경쟁력포럼’을 앞두고, 녹색 전환을 위한 전략과 과제를 짚어본다.
대한항공 보잉 787-10 ⓒ 대한항공
국가 간 물류를 책임지는 항공물류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인프라다. 하지만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배출 감축 압박을 가장 강하게 받는 분야다.
항공 분야의 탄소 배출 비중은 전 세계적으로 2~3%를 차지한다. 비율로 보면 작을 수 있지만 높은 고도에서 직접 탄소를 배출하는 특성 때문에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지상 배출분보다 훨씬 크다. 고도 10km 상공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간 대기에 잔존하며 강력한 온실효과를 유발한다. 또 항공화물은 운송 속도가 빠른 대신 단위 화물당 탄소배출량이 해상운송보다 50~100배 많다.
특히 항공운송은 반도체와 의약품, 배터리, 전자제품 등 현대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고부가가치 화물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항공물류의 탈탄소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전략이 됐다.
아울러 지금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직접 소유 또는 통제하지 않는 가치사슬(Value Chain)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탄소 배출(Scope 3)’까지 관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물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Scope 3는 기업이 직접 배출(Scope 1)하거나 기업이 구매한 에너지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Scope 2)하는 영역 밖의 간접 배출을 의미한다.
◆ 한국 정부의 지속가능항공유 혼합의무화제도 2027년 시행
각종 규제도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먼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2022년 10월 제41차 총회에서 국제항공 부문의 탄소 순배출을 2050년까지 ‘제로(Net Zero)’로 만드는 장기 글로벌 목표(LTAG)를 채택했다. LTAG에서는 단순히 배출권을 구매해 상쇄(Offsetting)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항공기 및 연료 자체에서 배출량을 직접 감축(In-sector measures)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역시 2021년 총회를 통해 2050년까지 항공산업의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속가능항공유(SAF) 도입, 신기술 항공기 개발, 인프라 및 운영 효율화 등의 전략을 제시했다.
유럽연합(EU)은 항공 분야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내용으로 2023년 채택된 ‘리퓨얼 이유 항공(ReFuelEU Aviation)’ 규정에 따라 SAF 사용 의무화를 본격 시행했다. 그 내용을 보면 2025년 1월부터 EU 역내 공항에서 급유하는 모든 항공기는 항공유에 SAF를 최소 2% 이상 의무적으로 혼합해야 한다. 이 비율은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로 높아진다.
한국 정부 역시 2025년 9월 발표한 ‘SAF 혼합의무화제도 로드맵’에 따르 2027년부터 국내 공항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 항공편에 SAF 혼합 급유를 의무화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공항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 항공기는 SAF 1%를 혼합해야 한다. 이 비율은 2030년 3~5%, 2035년 7~10% 수준으로 점차 확대된다.
이와 함께 국제선 항공사들은 ICAO의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 규제를 받고 있다. CORSIA는 기준치(2019년 배출량의 85%)를 초과한 탄소 배출량에 대해 의무적으로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제도다. 이에 따르면 항공사들은 운항 노선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증가분만큼 탄소 크레딧을 확보해야 하는 상쇄 의무(Offsetting Obligation)와, ICAO에 등록된 검증기관을 통해 매년 배출량을 검증받는 모니터링·보고·검증(MRV) 의무를 진다.
◆ 지속가능항공유의 높은 가격과 생산량 부족 문제
이 같은 탄소 배출 규제를 충족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SAF다. SAF는 폐식용유, 농업 부산물, 바이오매스, 생활폐기물 등을 원료로 생산하는 친환경 연료다. 항공기 구조 변경이나 다른 설비 구축 없이 기존 항공기 엔진과 공항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업계에서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 감축량의 절반 이상을 SAF가 담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항공사와 물류기업들은 SAF 확보 경쟁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국내외 정유사들과 협약을 맺는 등 SAF 확보에 주력하면서, 일부 노선에서 1~2% 비율의 SAF를 혼합해 시범 운항하는 등 향후 전면 의무화에 대비하고 있다. 글로벌 물류기업인 DHL과 페덱스, UPS 등도 장기 구매계약 체결과 생산업체 투자 등을 통해 공급망 확보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생산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SAF 생산량은 전체 항공유 소비량의 1% 미만에 불과하며, 가격 역시 일반 항공유보다 2~5배 비싸다. 결국 항공사들의 연료비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항공권 가격과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항공업계는 SAF 외에 대안들도 고민 중이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운항을 최적화하고 관련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연료 소모를 줄이는 최적 항로를 설계하고 △화물 적재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지상 대기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공항 관제시스템을 최적화하고 △휘발유·경유를 사용하던 공항 내 지상조업장비를 전기 장비로 바꾸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수소 항공기 개발도 대안으로 부각된다. 현재 개발을 진행 중이지만 지금 기술 수준은 단거리 소형 항공기 중심의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 화물·여객기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 항공업계 탈탄소 전환 비용 분담 방안 논의 필요
문제는 항공업계의 탈탄소 전환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항공 서비스가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이고 공공성이 크기 때문에 이 비용을 항공사들이 모두 부담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정부와 항공사, 화주기업, 소비자 사이의 비용 분담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현재 일부 국가와 국제환경단체, 시민사회 중심으로 ‘항공티켓 기후부담금(Climate Ticket Levy)’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항공티켓 기후분담금은 항공권 가격에 탈탄소 비용 일부를 반영하는 일종의 세금이다.
결국 항공업계의 기후위기 대응과 친환경 전환을 위해서는 산업계의 투자에 더해 정부의 세심한 정책 지원과 사회적인 합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SAF 공급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글로벌 차원의 투자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폐식용유 등 원료 공급망 다변화, 전용 생산설비 확충,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세제 지원 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