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적 수준의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 가끔 있는데, 이번엔 곤충인 벌이 도구를 사용해 먹이를 얻는 모습이 과학자들의 연구로 밝혔졌다.
이렇게 되면 곤충도 지능(문제해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꽃에 앉아있는 호박벌 사진. ⓒEPA/연합뉴스
4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호박벌이 목표로 삼은 설탕물을 얻기 위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점을 과학자들이 확인했다. 침팬지가 상자를 탑처럼 위로 쌓아올려 높은 곳의 바나나를 꺼내듯, 호박벌 역시 공을 굴려 발판을 만든 뒤 꽃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침팬지의 '상자와 바나나' 실험은 동물의 지능(문제해결 능력)을 증명하는 유명한 과학 실험이다.
호박벌의 도구 사용 능력을 확인한 이번 연구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실험을 주도한 루콜라 박사는 "이 실험만으로 벌이 인간처럼 사고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곤충의 아주 작은 뇌 역시 예상보다 훨씬 유연한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어린 호박벌들을 대상으로 파란색 인공 꽃 안에 설탕물을 넣어둔 뒤, 이후 꽃을 벌이 직접 닿을 수 없는 천장 높이로 옮기고 실험 공간 안에 공을 배치했다.
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벌이 공을 꽃 바로 아래까지 굴린 뒤 그 위에 올라서야만 했다. 어린 벌들은 이러한 행동을 사전에 한번도 훈련받지 않았지만, 실험에 참여한 개체의 75%가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연구진은 난이도를 높여 붉은 조명을 이용해 꽃을 인위적으로 가린 상태에서 실험을 이어갔다. 꽃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린 호박벌 30마리 가운데 23마리가 이전에 꽃이 있던 위치를 기억해 공을 정확히 꽃 아래로 굴려 놓았고, 이를 발판 삼아 설탕물을 얻는 데 성공했다.
행동생태학자 라르스 치트카 런던 퀸메리대 교수는 "지능은 큰 뇌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벌은 아주 작은 신경계로도 상당한 수준의 지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이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더 존중해야 할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식물마저 '지능적 행동'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식물 이미지. ⓒAFP/연합뉴스
과학 전문 기자이자 식물의 지능을 다룬 책 '빛을 먹는 존재들'의 저자 조이 슐랭거는 5월21일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 출연해 "과학계에서도 지능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며 "지능은 매우 유연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슐랭거는 이어 "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영에 가장 유리한 방향을 끊임없이 선택하는 존재"라며 "지능을 번영을 위한 선택의 능력으로 본다면 식물 역시 지능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이 슐랭거에 따르면 식물은 청각적 자극을 감지하는 능력이 매우 발달해 있다. 식물에게 소리는 진동이라는 물리적 자극이며, 식물은 자신의 포식자가 내는 고유한 진동 패턴을 구분해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실험에서는 식물이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을 때 발생하는 진동 패턴을 인식해, 해당 리듬이 감지될 때만 방어 체계를 가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은 이때 잎의 맛을 더 쓰게 만드는 화학물질을 생성해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했다.
식물은 생존에 필수적인 빛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식물은 자신에게 도달하는 빛이 줄어들었을 때 그것이 단순히 구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식물에 의해 가려진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녹색광 정보를 활용해 자신을 가리고 있는 식물이 친족인지 여부까지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식물은 주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신호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이를 나름의 의사결정 체계 속에서 정리한 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슐랭거는 식물의 기억력과 학습 능력을 시사하는 연구 사례도 소개했다.
연구진이 화분에 심긴 식물을 바닥에 반복적으로 떨어뜨리는 실험을 진행하자, 식물은 처음에는 즉시 방어 반응을 일으켰다. 그러나 같은 자극이 반복되는데도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학습한 뒤에는 방어 반응과 관련된 화학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슐랭거는 일부 연구자들이 이러한 결과를 두고 식물 역시 기억과 학습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들은 전략적 판단이나 지능, 도구 사용과 같은 능력이 인간만의 것이라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쩌면 이러한 능력은 특정 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물계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보편적 특성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