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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금융그룹 등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연달아 가상자산 거래소에 투자하며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이끄는 하나금융그룹이다.

하나금융그룹은 가상자산 시장 진출의 주체로 계열 증권사인 하나증권이 아닌 ‘하나은행’을 내세웠다. 하나은행을 통해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인 두나무에 1조 원이 넘는 거액을 베팅한 것이다. 

함영주 회장이 증권사가 아닌 은행을 주체로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바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다. 

하나금융지주 함영주 '은행'으로 1조 베팅한 이유 : 법제화도 수요도 '미완성'이지만 스테이블코인 발행권 '퍼스트무버' 노린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두나무 투자의 주체로 '은행'을 점찍은 데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향한 복안이 담겨 있다. ⓒ하나금융지주

다만 시장에서는 아직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다는 점,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수요와 관련된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 등이 이번 투자가 결실을 맺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우려도 나온다.

◆ 함영주 회장이 그리는 청사진, 핵심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권'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함영주 회장은 일찍부터 하나금융그룹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차례 강조해 왔다.

함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임직원들에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사용·환류로 이어지는 완결된 생태계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2025년 연간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 직접 등장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스테이블코인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에 함 회장이 하나은행을 통해 두나무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결정한 배경에도 '스테이블코인 발행권'을 둘러싼 규제 이슈가 숨어있다. 

일반적으로 증권사들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투자하는 목적은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토큰증권(STO) 시장 진출,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 거래 수수료 수익 확보 등 자본시장법 체계 안에서 증권사가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는 영역들로 진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하나금융그룹의 목적지는 다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권을 선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 하나금융그룹이 가상자산과 접점을 만들 때는 ‘은행’을 사이에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현재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두고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논의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를 '시중은행이 지분 50%+1주 이상을 보유한 컨소시엄'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역시 "은행은 이미 엄격한 자본·외환규제를 받고 있으며 중앙은행 제도의 틀 안에 있어 금융안정 리스크를 억제하기 용이하다"며 은행 중심의 발행 원칙을 견지해 왔다. 

실제로 하나금융그룹은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스테이블코인 선점을 위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나금융그룹은 올해 초 BNK금융, iM금융, SC제일은행, OK저축은행 등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특수목적회사(SPC) 설립 컨소시엄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4대 금융그룹 가운데 최초의 행보다.

◆ '발행-유통-결제' 아우르는 거대 핀테크 플랫폼 벨트 구축

함 회장이 1조 원 규모의 두나무 투자를 통해 그리는 청사진은 뚜렷하다. 발행은 하나은행 중심의 컨소시엄이 맡고, 유통은 업비트가 담당하며, 결제 인프라는 네이버파이낸셜이 책임지는 구도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부터 유통, 결제, 환류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거대한 컨소시엄 안에서 아우르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이 구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연결고리는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포괄적 주식교환이다. 두 회사는 2025년 11월 '두나무 1주 대 네이버파이낸셜 2.54주' 비율의 주식교환을 의결한 바 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성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간편결제 서비스 사용자 약 3천만 명을 보유한 네이버페이와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결합이 눈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두 회사의 합병 법인 기업가치는 약 20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하나은행은 이번 지분 인수를 통해 이 거대한 핀테크 플랫폼 벨트의 주요 투자자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함 회장은 이번 투자와 관련해 "단순한 투자 목적이 아니다"라며 "전통 자산과 디지털 자산을 아우르는 금융 생태계를 선도하겠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 법제화와 수요 불확실성, 청사진 뒤에 숨은 과제들

문제는 이 거대한 구도 전체가 '법제화'와 '수요'라는 두 가지 거대한 전제 조건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전제인 법제화부터 보면, 시중은행 중심의 '51% 지분 제한 룰' 자체가 아직 확정된 법안이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관련 보도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고 해명했으며, 업계 안팎의 격론 끝에 법안 본문에 발행 주체 제한 조항을 명시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입법 시기 역시 불확실하다. 함 회장 본인도 "법제화가 완료되면 속도감 있게 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전제를 달았다. 결국 전제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행된 선제적 투자인 셈이다.

스테이블코인 자체에 대한 수요 논란은 좀 더 근본적 변수로 꼽힌다. 과연 스테이블코인의 수요가 충분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영란은행(BoE)의 메건 그린 정책위원은 5월31일 열린 두브로브니크 컨퍼런스에서 "5년 뒤에는 우리가 왜 스테이블코인을 논의하고 있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며 “궁극적으로 토큰화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을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혁신을 이끄는 핵심 수단"이라고 바라봤다. 글로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독자적 수요의 한계도 지적된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원화의 수출결제 비중은 3.4%, 수입결제 비중은 6.6%에 불과하다. 역대 최고치임에도 이 정도 수준이다. 반면 달러는 수출 84.2%, 수입 79.3%로, 5년 만에 최저치임에도 압도적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장으로 가면 달러 기반 코인의 비중은 가히 압도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5월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장에서 달러 기반 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8.1%에 이른다. 

이 구도 속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 독자적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권 일각에서 규제 리스크 방어와 실용성 측면을 고려할 때, 민간 스테이블코인보다는 한국은행이 주도하는 CBDC 등 예금토큰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것이 더 현실적 대안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 자본비율 하락 우려, 다만 대안적 수익 경로도 준비돼 있다

투자 규모가 1조 원으로 작지 않은 만큼, 재무적 측면과 시장의 우려 섞인 시선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하나금융지주의 2026년 1분기 말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3.09%다. 하나금융의 자체 목표 관리 구간(13.0%~13.5%)의 최하단에서 겨우 0.09%포인트 여유를 두고 있는 수치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1조 원 투자금에 비상장주식 장기투자 기준 위험가중치(RWA) 250%가 적용되면, CET1 비율이 약 11bp(0.11%포인트) 하락해 자체 관리 하단인 13.0%를 밑돌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무리한 투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투자금은 하나은행 전체 자기자본(약 36조 원)의 2.78% 수준에 불과하며, 차입(레버리지) 없이 전액 현금으로 치러지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도 시장의 우려가 다소 과도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나증권은 5월18일 보고서를 내고 “시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금번 투자가 CET 1 비율을 11bp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1조 원의 무수익자산이 증가하면서 당장은 NIM과 수익성에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라면서도 “2분기에는 CET1 비율 상승 요인들이 작용할 것이고 무수익자산 증가 역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을 고려하면 크게 부담되지 않는 규모”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시나리오가 예상보다 지연되더라도 두나무 자체의 막대한 수수료 수익 배당, STO 및 RWA(실물자산 토큰화) 시장에서의 인프라 역할 확보, 기와체인 기반의 해외송금 사업 등 대안적인 수익 경로가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는 점도 함 회장의 '1조 베팅'이 지닌 장기적 잠재력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뛰어드는 건 당장 돈이 돼서라기보다, 디지털 결제판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방어적 선택으로 보인다”라며 “달러 중심의 디지털 결제질서가 커지고 빅테크 플랫폼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은행권도 예금 기반의 안전한 결제수단을 미리 깔아둬야 향후 결제·정산 인프라의 주도권을 지킬 수 있다는 절박함이 사실상 전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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