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선거는 '이름 선거'라는 말이 나온다. 투표용지에 기호와 정당명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후보자의 이름만 남아 있다. 유권자가 누구를 찍을지 미리 알고 가지 않으면 투표소에서 적잖이 당황할 수 있다.
정승윤 부산시교육감 후보 측이 5월24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왼쪽). 조전혁 전 의원이 5월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 출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sy_vision_tv 인스타그램 계정/연합뉴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당 공천을 금지하고 후보자의 정당 활동도 엄격히 제한한다. 후보자는 등록일 기준 1년 동안 정당 당원이나 당직자가 될 수 없고, 특정 정당의 지지·추천을 내세우는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이처럼 교육감 선거는 법적으로는 '정치색 없는 선거'를 지향한다. 하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후보들은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갈라져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정치의 옷을 벗고 출발하지만, 막판에는 다시 정치의 색깔이 짙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토론 대신 '보수냐 진보냐' 진영 논리만 무성
이런 현실은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엄격한 정치적 중립 의무와도 대비된다. 현직 교사들은 SNS에서 선거 관련 게시물에 '좋아요' 하나만 눌러도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반면 교육감 후보들은 정당 이름만 내세우지 않을 뿐, 정당의 상징색을 차용하거나 보수·진보 진영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거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교육 정책 경쟁보다 정치적 성향이 더 주목받으면서 선거 제도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육 철학과 정책 경쟁이 펼쳐져야 할 자리에는 이념 공방과 진영 대결이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당의 개입을 막기 위해 만든 선거지만, 역설적이게도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색깔부터 확인하는 선거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제도와 현실의 괴리는 일부 지역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전국 최대 규모의 유권자가 몰린 경기교육감 선거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경기교육감 선거판은 교육 전문가들의 정책 경쟁 무대라기보다 거물급 정치인들의 전장에 가까워졌다.
안민석 후보(왼쪽)와 임태희 후보가 5월26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열린 경기도 교육감 선거 후보자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보수 성향의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선거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고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16·17·18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이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의 총괄상황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 임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 측근인 김승희 전 대통령실 비서관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직무유기 등 혐의)으로 올해 1월 고발당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고 있다.
이에 맞서는 안민석 진보 단일 후보 역시 경기 오산에서만 5선을 지낸 베테랑 정치인이다.
안 후보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과정에서 경찰관들을 폭행한 혐의(상해·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됐고,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 원이 확정됐다. 이에 임 후보는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5월30일, '폭력 전과 교육감 후보에게 우리 아이를 맡기실 건가요?'라는 공격적인 메시지를 냈다.
경기도 고양시 지축역 인근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한편 안 후보는 지난 2011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간사 시절, 일진의 강요로 빵을 대신 사다 주는 행위인 '빵셔틀'을 학교폭력 범위에 포함할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심부름시킬 수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과거 일화가 다시 알려지기도 했다.
'문해력'으로 해석한 역사 인식 논란, 정치 공방의 중심에 선 교육
정치적 논란이 교육의 본질을 집어삼킨 풍경은 부산도 마찬가지다. 부산교육감 선거에 나선 정승윤 후보는 스타벅스의 이른바 '5.18 탱크데이' 논란을 자신의 선거운동 홍보물로 끌어들여 '탱크는 전차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두둔해 파장을 일으켰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으로 번진 사안에 대해 국민의힘과 유사한 해석을 내놓으며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정승윤 부산시교육감 후보 측이 5월24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이다. ⓒsy_vision_tv 인스타그램 계정
정 후보는 5월24일 자신의 SNS에 "스타벅스 탱크. 탱크는 전차인가? 텀블러인가?"라고 반문하며, 과거 셀프 주유소가 없던 시절 자주 쓰던 일본어 유래 표현인 '기름 만땅'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정 후보는 가득 찰 '만(滿)'에 영어 '탱크(Tank)'의 앞 글자를 딴 일본식 조어이므로, 여기서 탱크는 '연료통을 가득 채우다'라는 뜻이지 '전차에 기름을 채우라'는 뜻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정 후보는 이것이 바로 "문해력"이라며, "부산 교육의 문해력을 확실히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짓밟았던 탱크의 기억과, 과거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던 언어를 단순한 ‘문해력 테스트’로 치환해 버린 정 후보의 행태를 두고 시민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정 후보는 5월31일 부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만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국민의힘 후보 선거 유세 지원을 위해 부산을 방문했다. 정 후보는 이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최근 공동 저자로 참여한 저서 '손현보 목사의 항소 이유서'를 소개하기도 했다.
정승윤 부산시교육감 후보가 삭발하는 영상을 지난 1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sy_vision_tv 인스타그램 계정
법학과 교수이자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정 후보는 권익위 재직 시절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을 '처벌 조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특히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둔 5월, 해당 사건의 재조사 과정에서 비공식 회동과 의결서 절차 위반 의혹이 제기돼 수사 의뢰로 이어지자, 정 후보는 삭발까지 감행하며 '정치 공작'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지층 결집 도구로 선거에 활용하는 성소수자 관련 이슈
일부 후보들은 보수 정체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과 자극적인 발언을 지지층 결집의 도구로 삼기도 한다.
조전혁 전 의원이 5월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 출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조전혁 후보는 서울 시내 전역에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조 후보는 지난 5월 한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쟁자인 윤호상 후보가 보수진영 예비후보로 선출된 것을 두고 "'이토 히로부미'를 독립군 대장으로 뽑아 놓은 격"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네거티브 전쟁에 불을 붙였다. 다양성과 상호 존중을 가르쳐야 할 교육감 선거가 도리어 혐오와 막말의 경연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이 주민 직선으로 처음 선출된 것은 2010년 6월 2일 치러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다. 그전까지는 교육위원회나 선거인단을 통한 간선제, 또는 임명제가 운영됐지만, 교육 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면서 유권자가 직접 교육 행정 수장을 뽑는 직선제가 도입됐다.
교육감 선거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실제 선거는 정당 공천의 외피만 벗었을 뿐 정치적 진영 대립과 이념 공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책 경쟁보다 정치적 공방이 앞서는 현실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해 온 제도의 취지와도 멀어 보인다.
교육감은 시·도 교육청을 이끄는 교육 분야 최고 책임자로, 교원 인사와 교육 예산, 학교 운영, 학생 복지 등 지역 교육 전반을 총괄한다. 결국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이름뿐 아니라 이력과 언행, 교육 철학과 정책 역량까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당도 기호도 없는 선거에서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결국 유권자의 검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