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미국과 종전과 관련한 양해각서(MOU) 협상에서 '합의불발(노딜)' 가능성을 내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2019년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불발로 빈 손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되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 AFP통신=연합뉴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산하 타스님 통신은 5월31일(현지시각)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이란 사이에 종전협상을 위한 문안 교환이 계속되고 있고, 이란도 당연히 합의문에 자체 수정안을 반영하고 있다"며 "다만 이란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완벽히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란이 노딜 가능성을 내걸면서 미국을 압박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노딜'이라는 뼈아픈 기억을 되살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아 핵관련 합의를 눈앞에 뒀다가 협상 시작 약 4시간 만에 협상이 무산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모든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면서 협상결렬 책임을 북한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 뒤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성급함과 '빅딜 아니면 노딜' 식의 협상 방식이 기회를 날렸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북한 대상 비핵화 외교는 사실상 물 건너 갔고, 트럼프 1기 행정부가 공언했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는 지켜지지 않은 약속으로 남았다.
이란이 '노딜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벼랑 끝 전술이거나, 반대로 군사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국에 대한 압박일 수도 있다. 실체적 진실은 알기 어려우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딜은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할 공산이 크다.
이란이 버티기에 돌입했다는 간접적 증거는 군사력 평가에서도 나온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정보당국의 기밀평가를 인용해 5월13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란은 개전 직전 미사일 재고의 약 70%를 회복했고, 호르무즈 해협을 따라 배치된 33개 미사일 기지 가운데 30개를 작전 가능한 상태로 되돌린 것으로 파악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묘사해온 '궁지에 몰린 이란'과 다른 양상이다.
물론 군사적 대응 능력과 별도로 이란의 경제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5월28일 분석기사에서 미국의 해상봉쇄로 이란의 경제가 극심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이것이 협상테이블로 이란을 이끌 주요 동인이라고 바라봤다.
하지만 이란의 악화된 경제 상황만큼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위태롭다는 분석도 만만하지 않다. 올해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여당인 공화당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협상이 합의 없이 표류할수록 '딜 메이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브랜드는 손상되고 에너지 시장과 글로벌 공급망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이란이 이번에 '노딜'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단순한 협상전술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체력에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이 '노딜'에 대한 완전한 대비 선언이 나온 현 시점에서 협상 시계의 압박이 미국과 이란 어느 쪽에 더 크게 작용하는지가 최종합의의 윤곽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