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엔비디아와 전략적 공조를 본격화해 ‘피지컬 AI’ 실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피지컬 AI 시장에서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의 성패를 가를 관건은 AI 생태계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와 단순한 청사진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 성과물과 양산 수치로 증명해 내는 실행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현대자동차그룹,LG그룹
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황 CEO가 1일 ‘GTC 타이베이’ 기조연설에서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탑재된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면서 엔비디아와 K-반도체로 이어지는 견고한 동맹체제가 대체 불가능한 핵심 축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시각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베라 루빈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마이크론의 메모리를 탑재하지만 기존 시장 점유율처럼 국내 반도체 투톱(Top)의 비중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분기 기준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7%로 1위, 삼성전자가 22%로 2위를 기록했다. 두 기업이 모두 합쳐 5분의 4를 점령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2월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공급할 HBM의 양산 출하에 성공한 데 이어 SK하이닉스도 뒤따라 납품을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 황 CEO는 AI PC용 칩 ‘N1X’를 공개하며 AI 노트북 시장에 진출한다는 점을 공식화했는데 여기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혜를 볼 것으로 점쳐진다. 엔비디아의 N1X에는 두 회사의 고성능 저전력 메모리 ‘LPDDR5X’가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황 CEO의 GTC 타이베이 행사 참석 이후 국내 산업계 시선은 반도체를 넘어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청사진으로 옮겨가고 있다. 황 CEO가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 솔루션을 공개하는 데 공을 들였을 뿐 아니라 한국의 로보틱스를 향한 투자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열어뒀기 때문이다.
황 CEO는 국내 기업들과 만찬 행사인 ‘코리아파트너나이트’에서 “한국에 로보틱스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한국은 상상력과 창의력, 야망은 크지만 노동 인구가 부족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AI와 로봇이 잠재력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정의선 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향후 황 CEO와 피지컬 AI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는 데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과 2위인 SK그룹이 메모리반도체를 앞세워 엔비디아와 강력한 동맹관계를 형성한 가운데 3위와 4위인 현대차그룹과 LG그룹에게는 로봇을 중심으로 한 피지컬 AI가 공조관계를 꾸려 나갈 핵심 분야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과 구 회장은 조만간 한국을 찾을 황 CEO와 회동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황 CEO의 방한 소식이 퍼지면서 시장은 로보틱스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과 LG그룹 계열사에 큰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차 주가는 5월28일까지 2거래일 연속 하락했지만 관련 소식이 알려진 5월29일과 6월1일 이틀 동안 모두 10.8%가 상승했다. LG그룹 지주사 LG 주가는 같은 기간 43.2%가 급등했고 LG전자 주가는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다만 증권업계에서는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협력을 두고 나오는 시장의 기대감과 지금까지의 가능성을 구체적 협력 결과물이나 수치로 보여줄 정 회장과 구 회장의 실행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의 AI 투자에 따른 시장 수혜는 아직 반도체 기업에 집중돼 있고 피지컬 AI 관련 분야의 전망은 여전히 ‘물음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증권은 1일 ‘젠슨 황 2차 회동, 사진보다 주문서’ 보고서를 통해 “2025년 10월 황 CEO와 재계 총수의 1차 만남이 AI 팩토리와 반도체 중심이었다면 (5일로 알려진) 2차 회동은 피지컬 AI와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이벤트”라며 “그러나 누가 황 CEO를 만나는지가 아니라 누가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반복 매출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동 자리의 ‘(기념)사진’이 아니라 실적을 거둘 수 있는 ‘주문서(계약)’라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발언과 증권업계의 평가처럼 이번 황 CEO의 7개월 만의 방한은 피지컬 AI 생태계 확장의 신호로 읽힌다. 엔비디아도 피지컬 AI를 실현할 실체가 필요한데 한국만큼 적합한 시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KB증권은 1일 ‘젠슨 황 방한 의미’ 보고서에서 “소프트웨어 모델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엔비디아는 로보틱스, 자동차, 가전 등을 실제로 양산하고 실증할 제조 파트너가 절실하다”며 “대규모 양산 설비를 갖춘 한국이 최적의 시험무대로 부상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황 CEO와 2025년 10월 이른바 ‘1차 깐부회동’에서 의견을 나눈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 사이 협력의 깊이를 더해 구체화한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은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Atlas)’를 중심으로 현대차그룹의 역량을 결집해 AI 로보틱스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엔비디아와 2025년 1월부터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피지컬 AI 개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시동을 걸었다.
구 회장은 이번이 황 CEO와 첫 공식 회동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LG AI연구원과 엔비디아 경영진이 직접 만나 ‘K-엑사원’ 기술 동맹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는데 AI 모델에서의 협력이 피지컬 AI 분야로 확장할 기회로 꼽힌다.
LG그룹에서는 가사 로봇 클로이드를 지닌 LG전자, 비전 센싱 시스템과 반도체 기판 사업을 확장하는 LG이노텍, AI 솔루션 사업을 진행하는 LGCNS 등이 엔비디아와 협력을 구체화할 계열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