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의 배터리 관련 사업의 부진이 신용등급, 실적 등 경영 전반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동춘 LG화학 대표이사 사장은 반도체와 전장 소재로 자신의 강점인 첨단소재사업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김동춘 LG화학 대표이사 사장. ⓒLG화학
19일 신용평가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LG화학이 신용등급의 하향을 막기 위해서는 부채 규모 관리와 함께 이익창출력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말 신용등급 'AA+'를 보유한 LG화학의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려 잡았다. 한국신용평가는 또한 LG화학의 신용등급과 등급전망과 관련한 주요 모니터링 지표로 '연결기준 매출액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와 '연결기준 EBITDA 대비 총차입금'을 제시했다.
LG화학이 등급전망을 다시 '안정적'으로 높일 수 있는 조건으로는 'EBITDA/매출액' 8% 이상과 총차입금/EBITDA 3배 이하가 제시됐다. 반대로 'EBITDA/매출액'이 8%를 밑돌고 총차입금/EBITDA가 3배를 넘으면 신용등급이 'AA'로 낮아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주요 지표에 모두 수익성 지표(EBITDA)가 결부돼 있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LG화학의 매출 대비 EBITDA 비율은 14.5%로 등급전망 상향 기준을 충족하고 있지만 EBITDA 대비 총차입금 비율은 5.1배로 신용등급 하향 범위 안에 포함돼 있다.
한국신용평가와 최근 1분기 실적, 증권업계 전망을 종합하면 LG화학 수익성 측면에서 배터리 및 배터리소재 부진으로 김 사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용평가는 "석유화학사업은 글로벌 증설 부담과 함께 중동발 원료 조달 리스크가 확대됐고 사업재편도 지연되고 있다"며 "여기에 배터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등 주요 시장에서 친환경 정책 후퇴 및 전기차 수요 둔화가 실적개선을 제약하고 있고 이는 첨단소재사업 (배터리소재) 수익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LG화학은 올해 1분기 석유화학사업에서 '깜짝 실적'을 거뒀으나 배터리 관련 사업의 부진이 전체 실적의 발목을 잡았다. 이는 김 사장의 첫 성적표였다.
LG화학 석유화학사업은 1분기 비용 절감과 포트폴리오 변화 등 구조적 개선 노력과 함께 중동 사태에 따른 긍정적 래깅효과(원료가 상승에 따른 시차효과)가 반영되면서 영업이익 1650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및 직전 분기와 비교해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이 영업손실 2080억 원을 낸 가운데 첨단소재사업도 430억 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보면서 LG화학 전체 실적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석유화학사업에서는 중동 사태로 생긴 래깅효과가 사라지면서 영업이익 폭이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사장에게 첨단소재사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셈이다.
LG화학 첨단소재사업에서 김 사장의 새로운 무기는 전자소재인 반도체 및 전장 소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AI 시장이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반도체와 전장 소재가 성장 잠재력이 큰 분야로 꼽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AI 인프라 확산 및 차량 전장화 가속 등의 환경 변화에 발맞춘 전자소재를 LG화학의 새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먼저 AI 반도체 시장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 패키징소재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동박적층판(CCL), 칩 접착 필름(DAF) 등 기존 제품에서 쌓은 시장 신뢰를 바탕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쓰이는 감광성 절연재(PID)로 분야를 넓히고 있다.
CCL은 반도체 패키지용 기판(PCB)의 핵심 소재로 절연재 위에 동박을 양면에 적층한 복합재료고 DAF는 패키지 공정에서 반도체 칩을 기판이나 다른 칩에 연결하는 데 사용하는 접착 필름이다. 특히 두 제품은 우호적 시장 상황에 힘입어 이미 1분기 첨단소재사업 영업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PID는 첨단 반도체 패키지에서 반도체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미세회로를 형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절연재다. AI 기술 고도화로 PID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LG화학은 제품 개발을 마치고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기존 플라스틱 소재와 비교해 여러 물성을 극복할 수 있어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유리(글라스)기판 관련 소재도 바라보고 있다.
AI라는 두뇌를 달고 진화하는 자율주행 분야를 정조준한 전장 부품용 소재사업에서는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열 접착체를 포함해 모터, 전력 반도체, 통신 및 센서 등 여러 부품 영역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또 추가 인수합병(M&A)을 통한 '점프업'도 검토한다.
김 사장은 최근 LG화학 첨단소재연구소 아래 관련 선행연구개발 조직을 통합·신설해 고부가 전자소재를 미래 성장의 핵심 축으로 집중 육성하기 위한 밑바탕을 갖추기도 했다. 이를 통해 현재 1조 원 수준의 전자소재 사업을 2030년까지 2조 원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김 사장은 LG화학에서 대표에 오르기 이전까지 반도체소재사업담당, 전자소재사업부장, 첨단소재사업본부장을 거쳤다. 새 성장동력이 김 사장의 전문분야인 점은 기대감을 더 키우는 요소로 꼽힌다.
전자소재를 통한 LG화학의 반등은 그룹의 기업가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와 LG AI연구원 등이 AI 영역으로 사업기회를 확장하는 가운데 아직 부진에 빠져있는 LG화학의 실적개선은 지주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8일 지주사 LG 분석 보고서에서 "그동안 LG그룹은 AI 산업 성장의 직접적 수혜주로 인식되지는 못했지만 LG전자는 최근 엔비디아와 로보틱스 협력을 공식화하는 등 피지컬 AI 영역에서 주목받고 있다"며 "LG화학도 구조적 수익성 회복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단기 실적개선이 기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사장은 전자소재 사업의 2030년 매출 목표 2조 원을 설정하며 "LG화학은 그동안 석유화학에서 첨단소재로 빠르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며 도전과 도약을 지속해왔다"며 "미래 신소재 분야를 향한 집중을 바탕으로 기술 중심의 고부가 첨단소재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