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의 뜨거운 태양 아래 제79회 칸 국제영화제가 한창이다. 전 세계 시네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올해 영화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생성형 AI'다.
칸 영화제는 공식 경쟁 부문에서 AI가 창작의 주도권을 쥔 작품을 전면 배제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미국 아카데미상 역시 AI로 구현된 출연자에게는 연기상 수상 자격을 주지 않겠다고 명문화하며 견고한 바리케이드를 쳤다.
이 단호한 선언들의 기저에는 예술계가 오래도록 품어온 하나의 절대적인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창작의 주체는 오직 인간'이라는 완고한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스크린 속 AI 배우가 아무리 관객의 영혼을 흔드는 짙은 감정과 섬세한 밀도의 연기를 보여주더라도 그들이 연기상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다.
AI 배우가 연기상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허프포스트코리아
문제는 AI 배우를 경연장 밖으로 밀어내는 이 냉정한 방침에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AI의 연기는 진공 상태에서 스스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 위에서 살아 숨 쉬는 AI의 표정, 떨리는 목소리, 미세한 움직임의 이면에는 그것을 정교하게 지휘하고 조율해 낸 인간의 '보조적 노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화계는 지금 눈에 보이는 단 하나의 가시적인 주체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오랜 관성에 갇혀, 창작의 주체에 대한 낡은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전통적인 영화 제작 플롯에서 늘 스크린에 나서는 '주체'만을 조명해 왔고, 그 주체를 빛나게 한 수많은 보조적 역할들은 쉽게 평가절하해 왔다. 하지만 AI 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시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렌즈 앞의 '절대적 창작 주체'로 군림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AI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도구를 세밀하게 디렉팅하는 '보조적 주체'로 그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창작의 퇴행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지휘자로 거듭나는 진화의 과정이다.
사실 영화계는 이미 육체를 벗어난 '보이지 않는 연기'의 파괴력을 경험한 바 있다. 영화 '그녀'에서 AI 연인인 '사만다'의 목소리 연기만으로 로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스칼릿 조핸슨이 떠오른다. 그녀의 수상은 전통적인 연기의 정의를 매섭게 흔들며, 육체가 없거나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는 연기는 언제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AI 배우의 등장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은 인간 배우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한계 너머로 밀어붙이는 새로운 연기의 지평을 보여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계의 논의는 여전히 '인간만이 유일한 창작자'라는 낡은 환상에 갇혀 있다. AI라는 새로운 주체는 이미 탄생했다.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AI의 합성물을 예술 작품으로 조율할 수 있는 보조적 기술을 부지런히 익히고 시험하는 일이다. 우리가 '인간 주체'라는 환상을 넘어설 때, 비로소 영화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감각과 감동의 영토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