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민이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발해 의사결정을 맡긴다.
종종 이렇게 선발된 정치인들이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정치인들을 교체한다. 이를 두고 누구도 ‘국가 경영권 침해’라고 반발하지는 않는다. 주인이 자신의 의사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대리인을 교체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움직임을 두고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날선 단어는 바로 '연금 사회주의'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노바나나 프로'로 생성한 이미지.
이재명 정부 들어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움직임을 두고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날선 단어는 바로 ‘연금 사회주의’다.
국민의힘은 최근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헌법적 쟁점'이라는 토론회를 열고 “반헌법적 연금사회주의로의 전환”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대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금융권, 재계 일각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연금을 앞세워 민간 기업을 통제하려 한다는 우려다.
여기서 시선을 잠시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으로 돌려보자.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리고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연기금이다. 그리고 캘퍼스는 매년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기업들을 선정한 뒤 해당 기업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들을 개선해야 하는지 제언하는 리스트를 발간한다. 소위 ‘포커스 리스트’라고 알려진 명단이다.
캘퍼스는 단순히 리스트를 공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주주행동에 나선다.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경영진에 대해 가차 없이 반대표를 던지고, 필요하다면 CEO 교체를 요구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월트디즈니, 시티그룹, 코카콜라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캘퍼스의 주주권 행사 대상이 됐다.
그렇다면 캘퍼스는 자본주의의 파괴자이자 사회주의의 선봉대인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은 이를 주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동주의'로 칭송한다. 캘퍼스가 개입한 기업들이 이후 성과가 개선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캘퍼스 효과’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스튜어드십 코드) 측면에서도 '연금사회주의'라는 매도는 부당함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하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피땀 흘려 맡긴 노후 자금을 굴려야 하는 거대 기관투자자다.
낙후된 지배구조 때문에 기업 가치가 떨어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노후 자금 손실로 이어진다. 국민연금이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배임이자 직무 유기다.
최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곳이 바로 국내 금융지주사들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소위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소유분산기업인 금융지주에는 확고한 지배주주가 없다. 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그룹의 주인이 아니라, 주주들로부터 경영을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하다.
대리인이 주인(주주)의 이익보다 자신의 안위에 몰두하는 것을 견제하는 것은 주인의 정당한 권리다. 현직 회장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쟁자를 제거하며 '셀프 연임'의 참호를 구축할 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주주에게서 나온다.
주인이 나서서 대리인에게 "똑바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가장 교과서적인 ‘주주자본주의’다. 이를 두고 '관치'나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영구히 누리겠다는 경영진의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정부가 국민연금을 활용해 기업을 통제하려고 드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의 방향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독립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잡아야 한다. 정부의 입김이 걱정된다면 그 '입김'을 차단할 시스템을 고민하면 될 일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번지수를 틀려도 한참 틀린 ‘반 시장적’ 주장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사회주의'라는 낡은 색깔론을 걷어내고, '자본주의'의 냉철한 원칙을 되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