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현실의 연애에서 좌절감을 느낀 뒤 상아로 완벽한 여인상을 조각했다.
그는 그 조각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옷을 입히고 입 맞추며 진짜 연인처럼 대했다.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의 진심에 감동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3천년 전 신화 속 인물이 고립과 외로움 끝에 만들어낸 이상적 존재에 탐닉했듯이, 오늘날 리얼돌(인간의 형상을 한 수음기구)을 찾는 사람들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결핍과 갈망을 안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리얼돌을 대하는 방식에서 신화보다 훨씬 인색하다.
리얼돌 소비자는 어쩌면 현실 연애에 염증을 느끼거나 밀려난 이 시대의 초라한 피그말리온일지도 모른다. AI 이미지.
리얼돌을 둘러싼 논쟁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지만 그 온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는 리얼돌이 일종의 '팝컬쳐'로 소비되며 상대적으로 관용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부 여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리얼돌에 대해서 강한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한 때 리얼돌 논란이 한국에서 크게 도드라졌고, 2019년 7월에는 리얼돌의 판매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기도 했다.
당시 청원인은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지녔지만 움직임이 없어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실제 여성들을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겠느냐"며 "리얼돌의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하라"고 말했다.
영국 BBC는 이와 같은 한국의 리얼돌 논쟁을 두고 '성적 취향'과 '성적 모욕' 사이의 정면충돌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사회에서만 리얼돌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바라볼까.
일각에서는 성범죄자 가운데 리얼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근거로 왜곡된 성의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하지만 리얼돌을 소유했다고 해서 반드시 왜곡된 성의식을 지니게 된다는 것은 위험한 논리전개일 수 있다. 이런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한 과학적 연구는 아직 없다. 오히려 리얼돌 소비자를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으로 단순화하는 프레임은 실제 데이터와 어긋난다.
재혼정보회사 온리유가 비에나래와 공동으로 이혼 및 재혼 경험자 6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재혼 대신 리얼돌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응답은 여성(17.5%)이 남성(14.5%)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이는 정서적, 성적 결핍을 해소하려는 욕구가 특정 성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연구에서는 리얼돌 소유자 절반가량이 실제 이상형 여성에 준하는 애정을 느낀다고 대답했고, 소유 뒤 여성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7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대법원은 2026년 4월 6년간의 소송을 거쳐 리얼돌 수입 허가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면서 리얼돌이 인간 존엄성이나 건전한 사회적 풍속을 해칠 만큼 적나라한 표현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내 리얼돌 관련 오프라인 전문매장이 생기고 대형 온라인 유통몰까지 판매가 확대되는 흐름은 법과 시장이 이미 리얼돌을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동이나 청소년을 본 뜬 리얼돌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는 아니다. 이 경우는 외국에서도 범죄로 규정하고 제재를 가한다.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나라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오히려 한국은 수입통관만 막고 있을 뿐 소지·제작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이를 형사 범죄로 규정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입법공백이 크다.
요컨대 성인 리얼돌에 대한 반대가 '성적으로 소외된 개인'에 대한 낙인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위험한 선입견일 수 있다. 어쩌면 리얼돌 소비자들은 현실 연애세계에서 염증을 느끼거나 밀려난 이 시대의 피그말리온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