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는 약 3초 분량의 영상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연인, 친구를 잃은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 애썼던 순간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 장면이 전쟁 게임에 삽입됐다. 참사 4주기를 앞두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영상 삭제를 요구했다. 가상의 전쟁 피해를 묘사하는 데 실제 참사의 기록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10월21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 게임 위크 2026' 사전 공개 행사에서 관람객들이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4’ 홍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게임 배급사 액티비전이 23일 출시한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4' 도입부에는 참사 직후 구급대원이 쓰러진 시민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방송 자료화면이 약 3초간 포함됐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긴장을 배경으로 북한의 남한 침공으로 전쟁이 벌어진다는 설정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을 묘사했다.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로 15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상을 즐기러 나선 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지고,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들이 서로를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에 나서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이태원참사 4주기인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인 '기억과 안전의 길’의 모습. ⓒ연합뉴스
피해는 그날 밤에 그치지 않았다. 생존자와 구조에 참여한 시민·소방관들은 오랜 시간 트라우마를 겪었고, 이후 정신적 후유증으로 숨져 참사 희생자로 인정된 사례도 이어졌다. 유가족과 생존자, 구조자들에게 참사는 4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은 고통이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28일 성명을 내고 해당 장면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수백명의 사상자를 낳은 비극적인 참사이며, 당시 구조에 참여하거나 목격한 시민들은 지금껏 트라우마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이러한 사건을 오락적 목적의 게임에 소재로 활용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며 몰상식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게임의 설정과 맞물려 희생자를 폄훼하는 온라인 댓글이 상처를 더하고 있다는 호소도 나왔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도 영상 사용 경위에 대한 설명과 사과, 영상 교체를 요구하면서 이번 일이 게임 전반에 대한 검열로 확대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태원참사 4주기인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한 시민이 추모의 시간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피해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참사 영상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가족을 잃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날의 기록이 전혀 다른 이야기 속에서 소비되는 상황까지 감당해야 한다. 여기에 조롱과 혐오가 붙는다면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액티비전은 28일 연합뉴스에 실제 뉴스 영상을 허구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요소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어떠한 실제 비극적 사건도 언급하거나 가볍게 다루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참사 4주기 기억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4'는 29일 기준 PC 게임 플랫폼 스팀의 한국 매출 순위 1위에 올라 있다.
앞서 이 게임은 정치권에서도 화제였다. 안철수·한동훈 의원 등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게임을 해보라고 권하며 대북 정책과 안보 인식을 비판했다. 다만 이는 참사 영상 사용 논란이 알려지기 전의 발언으로, 게임의 전쟁 설정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었다.
이러한 흥행과 정치권의 관심 속에서 참사 영상 사용에 대한 유가족의 삭제 요구도 제기됐다. 게임 제작진에게는 짧은 영상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날을 살아낸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