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번엔 애플의 상징인 '사과'를 잘게 썰었다. '얇게' 썰린 사과 조각은 갤럭시 폴더블폰처럼 접히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를 겨냥한 광고다. '접는 기술만큼은 우리가 한 수 위'라는 자신감을 사과 한 알로 보여준 셈이다.
15년 가까이 애플을 광고의 단골 소재로 삼아온 삼성은 이번에도 특유의 풍자로 눈길을 끌었다. 다만 경쟁사를 향한 풍자가 자칫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자인 스튜디오 포리얼(FOREAL)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10월16일(현지시각) 공개된 삼성전자 갤럭시 Z 폴드8 광고 영상의 장면들. ⓒweareforeal 인스타그램 계정
26일(현지시각) IT 전문매체 안드로이드어소리티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유료 협업한 디자인 스튜디오 포리얼(FOREAL)은 지난 16일 인스타그램에 갤럭시 Z 폴드8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갤럭시 Z 폴드8 옆으로 '새로운(New)'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초록색 사과가 등장한다. 애플의 첫 폴더블폰이 '신상'임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잘린 사과는 접히려고 하지만 제대로 접히지 않는다. 이어 갤럭시 Z 폴드8이 아이폰 듀오보다 접었을 때 1.6㎜ 얇고 53g 가볍다는 비교 수치가 등장한다. 광고는 '폴더블 분야에서 수년 앞서 있다(Years ahead in Foldables)'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삼성의 광고가 공개될 무렵 애플의 첫 폴더블폰은 화면 파손 논란에 휩싸였다. 23일 출시된 아이폰 듀오 일부 제품에서 접히는 부분을 따라 내부 디스플레이가 갈라지거나 화면에 흰색 줄이 생기는 사례가 여럿 보고된 것이다. 애플은 26일 소수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하고 해당 고객에게 교체를 안내했다.
사실 삼성의 도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월9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를 공개하자 삼성전자 미국법인은 엑스(X)에 "우리가 먹다 남긴 음식을 다시 데우는 일이 끝나면 알려달라"는 글을 올렸다. 애플이 처음 선보인 폴더블폰을 삼성은 이미 수년 전 내놓은 기술을 재활용했다고 비꼰 것이었다. 삼성은 이미 2019년 첫 갤럭시 폴드를 출시하며 폴더블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1년 11월23일(현지시각) 공개된 삼성전자 갤럭시 S2 광고 'The Next Big Thing Is Already Here'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애플을 향한 삼성의 도발은 폴더블폰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S2 광고 '더 넥스트 빅 싱(The Next Big Thing)'을 2011년 11월23일 공개하고, 아이폰을 사려고 애플스토어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풍자했다. 이들 곁으로 갤럭시 S2 사용자가 지나가자 한 남성이 "난 삼성은 안 써. 창의적인 사람이거든"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친구가 "넌 바리스타잖아"라고 받아친다. 애플 사용자들의 자부심을 꼬집은 장면이다. 광고는 '다음의 혁신은 이미 여기에 있다'는 문구로 끝난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2014년 7월3일(현지시각) 공개한 갤럭시 S5 광고 '월 허거(Wall Huggers)'의 한 장면. 공항에서 충전기를 찾아 벽에 붙어 앉은 아이폰 사용자들을 풍자했다. ⓒ유튜브 갈무리
삼성 광고는 아이폰 배터리를 공격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2014년 7월3일 공개한 '월 허거(Wall Huggers)' 광고에는 공항에서 콘센트를 찾아 벽에 붙어 앉아 있는 아이폰 사용자들이 등장한다. 당시 삼성은 탈착식 배터리와 초절전 모드를 지원하는 갤럭시 S5의 장점을 부각했다.
2017년 11월15일 공개된 '그로잉 업(Growing Up)' 광고에서는 아이폰 사용자의 10년을 다뤘다. 2007년부터 아이폰을 사용해 온 남성이 저장공간 부족과 이어폰 연결 문제 등 크고 작은 불편을 겪다가 결국 갤럭시로 갈아타는 내용이다. 광고 말미에는 아이폰X의 화면 상단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M자 머리' 남성까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2017년 11월15일 공개한 광고 '그로잉 업(Growing Up)'의 한 장면. 아이폰X의 화면 상단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머리 모양의 남성을 등장시켜 애플을 풍자했다. ⓒ유튜브 갈무리
스마트폰 기능뿐 아니라 애플의 광고 자체를 공격한 사례도 있다. 애플은 악기와 카메라 등 창작 도구를 유압 프레스로 압착하는 아이패드 광고 '크러시(Crush!)'를 2024년 5월7일 공개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삼성은 같은 달 15일 '언크러시(UnCrush)' 광고를 내놨다. 부서진 기타를 집어 든 여성이 갤럭시 탭을 보며 연주하는 모습을 통해 '창의성은 짓눌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애플의 광고 논란을 자사 제품 홍보에 활용한 것이다.
2024년 5월7일(현지시각) 애플이 공개한 아이패드 광고 '크러시(Crush!)'의 한 장면(위쪽). 악기와 카메라 등 창작 도구를 유압 프레스로 짓누르는 장면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후 삼성전자가 같은 달 공개한 '언크러시(UnCrush)' 광고에서는 한 여성이 부서진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 애플의 광고를 풍자했다. ⓒ유튜브 갈무리
삼성은 올해 9월11일 애플의 제품 발표 방식까지 패러디했다. 삼성 뉴질랜드 법인은 애플 전 최고경영자(CEO) 팀 쿡과 이름이 같은 현지 부동산 중개인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 영상과 비슷한 분위기에서 갤럭시 Z 폴드8을 소개하도록 한 것이다. 애플의 팀 쿡이 삼성 제품을 홍보하는 듯한 연출로 화제를 모았다.
반면 애플은 과거 윈도 PC를 풍자하는 광고를 선보인 적은 있지만, 삼성이나 갤럭시를 직접 겨냥한 맞불 광고는 좀처럼 내놓지 않고 있다.
2026년 9월11일(현지시각) 삼성전자 뉴질랜드 법인이 공개한 갤럭시 Z 폴드8 광고의 한 장면. 애플 전 최고경영자(CEO) 팀 쿡과 이름이 같은 현지 부동산 중개인이 애플의 신제품 발표 방식을 패러디해 갤럭시를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삼성과 애플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삼성전자가 5780만대(22.6%)로 1위를 차지했다. 애플은 5730만대(22.4%)로 뒤를 이었다. 두 회사의 격차는 약 50만대, 점유율로는 0.2%포인트에 불과하다.
다만 매출에서는 애플이 크게 앞선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매출 점유율은 49%로 삼성전자(16%)의 3배를 웃돌았다.
흥미로운 점은 삼성과 애플이 경쟁자이면서도 협력 관계라는 사실이다. 삼성이 광고에서 조롱한 아이폰 듀오의 폴더블 OLED 패널도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치열하게 맞붙으면서도, 부품 공급망에서는 협력하는 셈이다.
삼성의 애플 저격 광고를 바라보는 반응은 엇갈린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등에서는 삼성 특유의 유머가 돋보인다는 호평이 나오는 반면, 경쟁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아이폰 사용자가 광고 하나로 갤럭시로 갈아타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과 화제성을 끌어낸 것만으로도 성공한 마케팅이라는 평가가 맞선다. 삼성 제품 자체보다 애플을 조롱하는 내용이 더 부각된다는 피로감도 나온다.
한편 경쟁사를 겨냥한 광고에는 위험도 따른다. 과거 비판했던 제품 설계나 정책을 정작 삼성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다.
삼성은 애플의 이어폰 단자 제거를 조롱했지만, 2019년 갤럭시 노트10부터 같은 길을 택했다. 2020년에는 애플의 충전기 미포함 정책을 비꼬았지만, 이듬해 갤럭시 S21부터는 충전기를 기본 구성품에서 제외했다. 경쟁사를 향해 던졌던 비판이 결국 삼성 자신에게 돌아온 셈이다.
두 회사가 광고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도 사뭇 다르다. 삼성은 더 얇고 가벼운 제품, 한발 앞선 기술력을 내세운다. 반면 애플은 제품의 성능뿐 아니라 아이폰을 사용하는 경험과 브랜드가 주는 가치를 강조한다. 삼성이 '갤럭시가 얼마나 앞섰는가'를 보여주려 한다면, 애플은 '왜 아이폰이어야 하는가'를 설득하는 데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술적 우위가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경쟁사를 향한 조롱이 훗날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은 삼성도 이미 경험했다. 이번에도 삼성은 사과를 잘게 썰며 폴더블폰 기술력을 과시했지만, 광고 속 우위가 곧 소비자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애플까지 폴더블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두 회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