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새로운 무기로 초장기공급계약이 거론된다. 중국의 클라우드서비스기업(CSP)들이 먼저 10년짜리 공급계약을 요청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여기에는 삼성전자가 지닌 ‘초격차’ 기술력이 배경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황이 언제까지 호황을 이어갈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시각이 많다. 인공지능(AI) 투자 과열론과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려는 빅테크들의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수요 둔화에 대한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초장기공급계약을 통해 미래 수요를 미리 확보한다면 업황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수익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셈이다.
메모리 사업에서 확보한 안정적 이익은 삼성전자의 중요한 버팀목도 될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적자가 이어지고 모바일 사업의 수익성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메모리 사업의 이익 변동성을 낮추는 일은 다른 사업부의 부진을 상쇄할 방어력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초장기공급계약은 삼성전자가 보유한 기술 경쟁력이 장기간의 수익 안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메모리 수요 둔화와 중국 기업들의 추격, 다른 사업부의 실적 부진이라는 여러 과제가 맞물린 상황에서 이번 계약 논의가 삼성전자의 초격차를 실적 전반의 중장기 안정성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29일 삼성전자 3분기 세부 실적발표를 앞두고 장기공급계약(LTA) 관련 내용에 시선이 모인다. ⓒ연합뉴스
28일 반도체업계와 증권업계 안팎에 따르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삼성전자의 3분기 세부 실적발표에서는 장기공급계약(LTA)에 관한 사항이 추후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추가 LTA가 이익 안정성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CXMT의 포에프스퀘어(4F²) 기술을 적용한 D램 출시를 발표하는 등 정부의 지원과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삼성전자 추격을 위한 의지를 내비친 가운데 삼성전자의 초장기공급계약 가능성은 중국 기업들과 여전한 기술격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4F²는 D램 셀을 더 작은 면적에 배치하도록 셀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이날 삼성전자 분석보고서에서 “최근 중국 4대 CSP는 삼성전자 등에 서버용 D램에 관한 2035년까지의 10년간 초장기 공급계약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는 중국 CXMT가 서버용 고성능 메모리 기술력과 양산 안정성에서 여전히 뒤처져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생산능력의 절반 이상을 LTA로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기존 삼성전자의 LTA 기간은 통상적으로 5년이었는데 최근 요청은 이보다 두 배 늘어난 10년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삼성전자 실적의 안정성을 한층 더 높일 기회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고객사 LTA 요청은 중장기 미래 위험을 줄이려는 당사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며 “미래 수요와 계약 이행에 관한 높은 상호 구속력을 수용할 수 있는 고객사를 중심으로 LTA를 협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우선 전체 생산능력의 60~70% 수준에서 LTA를 체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상반기에는 글로벌 5대 데이터센터 고객사와 계약을 마치기도 했다.
특히 삼성전자 물량 가운데 중국 CSP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은 향후 이 기업들과 맺는 초장기공급계약의 효과를 더욱 부각하는 지점이다. 현재 삼성전자 D램 매출에서 중국 CSP가 차지하는 비중은 7~8%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맞이한다면 매출 성장 여력이 더욱 커지는 구조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에도 삼성전자와 LTA를 맺으려는 고객사들이 많았던 만큼 중국 CSP의 요청은 LTA 협상에서 메모리 가격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도 꼽힌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서 장기적으로 이익 안정성을 높이는 일은 메모리 수요가 기대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와 삼성전자 내 다른 사업부의 길어지고 있는 실적 부진을 상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AI 투자 과열론’이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들이 메모리 사용을 줄이는 전략을 검토하면서 수요 둔화 시점이 생각보다 빠르게 올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일례로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탑재되는 메모리 용량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구글도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터보퀀트)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역대 최고치의 3분기 잠정실적을 내놓은 뒤인 12일 삼성전자 분석보고서를 통해 “AI 투심이 개선되고 있는 것과 별개로 메모리 수요 둔화 움직임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며 “유례없이 높아진 수요 수준에 맞춰 공격적 증설 경쟁이 진행된다면 2027년 하반기 이후 공급과잉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중국 CSP와 추진하고 있는 초장기공급계약은 삼성전자를 향한 메모리 수요를 견고히 할 뿐 아니라 추후 업황이 꺾이더라도 안정성을 대폭 높여줄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초장기공급계약은 파운드리 사업부와 모바일(MX)·네트워크(NW) 사업부의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 전체 실적을 지속해서 완충할 만한 요소다.
수년째 영업적자를 보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는 3분기에도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1조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생산을 확대하고 가격을 인상했음에도 연말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미국 테일러 공장의 초기 비용이 수익성을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업계에서는 신공장 가동에 따른 비용 증가로 가까운 미래에 영업흑자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MX·NW 사업부도 3분기 최대 2조 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보며 1년 전과 비교해 적자로 전환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분기 영업손실 7천억 원을 낸 이후 영업적자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 사업부는 메모리 가격이 급등한 데 직격탄을 맞아 한동안 수익성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내년 삼성전자가 MX·NW 사업부에서 2조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도 내다보고 있다.
8일 3분기 잠정집계치를 발표한 삼성전자는 29일 3분기 사업부별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는 세부 실적을 발표한다.
삼성전자는 3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195조 원, 영업이익 107조4천억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DS부문은 영업이익 110조 원을 거둬 다른 사업부의 손실을 메운 것으로 추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