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는 여성 의원이 차량 공격을 받아 두 다리를 잃었다. 미국에서는 현직 시장이 자신과 가족을 향한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다음 선거 출마를 접었다. 브라질에서는 21세 여성 하원의원 당선인에게 살해·성폭력 협박이 쏟아졌다.
세계 곳곳에서 여성 정치인을 겨냥한 폭력과 협박이 이어지고 있다. 신변 위협에 가족과 사생활을 겨냥한 괴롭힘까지 더해지면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높고 단단한 장벽이 되고 있다.
10월26일(현지시각) 호주 캔버라 연방의회 하원에서 의원들이 헬렌 헤인스 의원을 향한 위로와 지지 발언을 들으며 슬퍼하고 있다. 인디 지역구의 무소속 헤인스 의원은 지난 19일 왕가라타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차량 공격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8일(현지시각) '여성 정치인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이 같은 현실을 경고했다. 헤더 바 휴먼라이츠워치 여성권리국 부국장은 남녀 정치인 모두 정치적 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여성은 성적 모욕과 성폭력 위협 등 더 많은 공격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10월21일(현지시각) 호주 왕가라타에서 '표적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헬렌 헤인스 의원의 사무실 앞에 쾌유를 기원하는 꽃들이 놓여 있다. 헤인스 의원을 공격해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는 남성은 이날 법정에 출석했다. 경찰은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극단주의가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AFP/연합뉴스
호주에서는 현직 여성 의원이 차량 공격을 받아 두 다리를 잃으면서 정치권이 충격에 빠졌다. 호주 ABC방송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무소속 연방 하원의원 헬렌 헤인스는 이번 달 19일 호주 빅토리아주 왕가라타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차량 공격을 받아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경찰은 43세 남성을 붙잡아 범행 동기를 수사하고 있다.
사건 이후 크리시 배럿 호주 연방경찰청장은 21일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극단주의가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는 거듭된 위협과 괴롭힘에 현직 여성 시장이 출마를 포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위스콘신공영라디오(WPR)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의 사티아 로즈콘웨이 시장은 3선 도전 의사를 철회했다. 자신과 가족, 직원들을 향한 폭력 위협과 괴롭힘이 출마를 접게 한 이유였다. 그는 성명에서 "공직 수행의 대가가 너무 커졌다"며 "나와 가족의 신체적 안전과 정신 건강, 안녕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노동자당(PT) 소속으로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최연소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아나 엘리자 산투스 시우바가 10월15일(현지시각) 브라질 디비노폴리스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브라질에서는 당선의 기쁨에 신변의 위협이 드리웠다. 노동자당(PT) 소속 아나 엘리자 산투스 시우바는 지난 4일 총선에서 52만4219표를 얻어 브라질 역대 최연소 여성 연방 하원의원 당선인이 됐다.
선거운동 기간 그에게 쏟아진 것은 지지만이 아니었다. 브라질 국영통신 아젠시아 브라질의 8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살해·성폭력 협박과 인종차별적 공격을 받았고 집 주소와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도 노출됐다. 이후 당이 무장 경호 인력을 붙인 데 이어 브라질 정부도 신변 보호에 나섰다.
미국 오하이오주 주지사 선거 민주당 후보 에이미 액턴이 10월24일(현지시각) 토요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신체적 폭력과 협박 외에, 여성 후보가 공개한 학대 경험을 선거 공격의 소재로 삼은 광고도 논란이 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 공화당 주지사 후보 비벡 라마스와미 측은 민주당 후보 에이미 액턴과 오랫동안 관계가 끊긴 친모를 등장시킨 광고를 내보냈다. 친모는 광고에서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을 밝힌 액턴 후보에 대해 직접 반박했다. 하지만 액턴 후보가 어릴 적에 계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고 당시 친모가 계부의 편을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확산했다. 그럼에도 JD 밴스 부통령은 광고를 둘러싼 비판을 일축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22일 광고를 계속 내보내라고 했다.
여성 정치인이 겪는 위협의 규모를 일부 보여주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국제의회연맹(IPU)이 올해 2월11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아르헨티나·베냉·이탈리아·말레이시아·네덜란드 등 5개국 사례조사에 참여한 여성 의원의 76%가 대중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남성 의원은 68%였다. IPU는 여성이 특히 온라인에서 성별을 겨냥한 모욕과 성적 공격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은 여성 정치인을 겨냥한 공격의 수단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유럽의회 녹색당·유럽자유동맹이 지난 5일 공개한 조사에서는 유럽의회 의원 50명이 AI를 이용한 성적 이미지 조작 등의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46명이 여성이었다. 동의 없이 성적 합성물이 만들어지거나 사진에 이른바 '옷 벗기기' 기능이 연결되는 식이었다.
이 같은 위협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여전히 낮은 상황에서 이어지고 있다. IPU와 유엔여성기구가 지난 3월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1일 기준 전 세계 내각 장관 중 여성 비율은 22.4%로 2024년 23.3%보다 낮아졌다. 이 하락을 정치적 폭력의 직접적인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출마와 공직 수행에 자신과 가족의 안전까지 걸어야 하는 현실은 여성이 정치에 진입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데 또 하나의 문턱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