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 경영진의 직급을 높이고 주요 사업부 인사를 재배치했다.
외부 인재 영입이나 대규모 경영진 교체보다 내부에서 검증된 인재에게 더 큰 권한과 책임을 맡겨 계열사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무게를 실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검증된 내부 인재를 주요 계열사 경영진에 전진 배치하며 책임경영 강화에 나섰다. ⓒ연합뉴스
이번 인사는 정 회장이 이어온 내부 인재 중용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과거 인사가 경영환경에 따라 안정과 쇄신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달리했다면, 이번에는 지주사와 주요 계열사 수장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사업별 책임자를 재정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주사 중심의 계열사 관리 체계를 다지는 한편 백화점 본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홈쇼핑·면세점의 사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며 패션과 식품사업의 성장 기반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경영진의 경험을 활용해 실행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9일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은 장호진 현대지에프홀딩스 대표와 박홍진 현대그린푸드 대표의 부회장 승진을 비롯해 승진 27명, 전보 23명 등 총 50명 규모의 2027년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는 2027년 1월 1일자로 시행된다.
◆ 장호진·박홍진 부회장 승진, 지주사와 식품사업에 무게
이번 인사의 중심에는 장호진 현대지에프홀딩스 대표이사와 박홍진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의 부회장 승진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주요 계열사에서 경영 경험을 쌓은 내부 인사다. 지주사와 식품사업 핵심 계열사의 수장을 부회장으로 격상해 경영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장 부회장은 1987년 현대그룹에 입사해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장과 기획조정본부장을 거쳤으며, 2020년 현대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2023년부터는 현대지에프홀딩스 대표를 맡아 그룹 경영관리와 백화점 사업을 두루 경험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주사 현대지에프홀딩스를 중심으로 계열사 관리 체계를 정비하고 기업가치 개선을 추진해왔다. 현대홈쇼핑의 완전 자회사 편입과 사업구조 개편도 지주사 중심의 경영 체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장 부회장은 그룹 경영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계열사 간 조정과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에서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 부회장은 식품사업의 안정적 운영과 신성장 분야 확대를 맡는다. 1995년 현대경제연구원에 입사한 뒤 현대백화점 영업본부장을 거쳐 2015년 현대그린푸드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고, 2017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장기간 식품사업을 이끌어온 경험이 이번 승진의 바탕이 됐다.
현대그린푸드는 단체급식을 중심으로 사업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케어푸드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신규 사업의 성장 성과를 가시화해야 하는 만큼, 박 부회장에게는 사업 안정성과 성장 동력을 함께 확보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 홈쇼핑·패션은 사업 전문성에 무게, 한광영·유태영 전면에
한광영 현대홈쇼핑 대표이사 부사장의 사장 승진은 사업 재편과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책임 확대라는 의미가 있다. 한 사장은 1991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현대홈쇼핑 Hmall사업부장과 생활사업부장, 영업본부장을 거쳐 2024년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다. 영업 현장과 온라인 사업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홈쇼핑 업계는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 송출수수료 부담, 소비자의 구매 방식 변화에 직면해 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현대홈쇼핑의 지배구조와 사업구조를 개편하며 경영 효율화와 본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 사장에게는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사업 재편의 성과를 실적 개선으로 연결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한섬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내정된 유태영 전무는 해외 패션사업 경험이 두드러진다. 1993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뒤 해외·잡화사업부장을 지냈으며, 한섬으로 자리를 옮겨 패션사업본부장과 해외패션담당, 해외패션본부장을 역임했다. 국내 백화점 영업부터 해외 브랜드 운영까지 경험한 만큼 한섬의 해외사업 확대를 이끌 인물로 꼽힌다.
한섬은 타임·시스템 등 자체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확대하는 동시에 수입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브랜드와 사업 영역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질적인 매출 성장으로 연결하는 것이 과제다. 유 내정자는 해외사업의 성장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내 사업의 경쟁력과 수익성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현대디에프 박장서 대표이사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20년 현대면세점에 합류한 박 부사장은 영업본부장과 상품본부장을 거쳐 2025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영업과 상품 운영을 두루 경험한 만큼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면세점 사업은 외국인 관광객 수뿐 아니라 구매 단가와 공항 임차료 등 비용 구조에 따라 실적이 달라진다. 관광 수요 회복을 매출과 수익 개선으로 연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박 부사장에게는 상품 경쟁력과 운영 효율을 함께 높여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 백화점은 신규 출점·상품 경쟁력 강화, 주요 보직 재배치
현대백화점은 상품본부장 김봉진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신규점프로젝트추진본부와 미래성장추진실, 영업전략실의 책임자를 재배치했다. 신규 출점과 기존 점포의 경쟁력 강화를 병행하면서 상품 차별화와 영업 효율을 높이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김 부사장은 미래MD사업부장과 해외럭셔리사업부장을 거쳐 상품본부장을 맡았다. 상품 기획과 해외 명품 브랜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점포별 차별화 콘텐츠를 강화하고 고객 유입을 확대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조직 개편에서는 김창섭 부사장이 신규점프로젝트추진본부장을 맡았고, 류영민 전무와 최원형 전무가 각각 미래성장추진실장과 영업전략실장으로 이동했다. 신규 점포 사업의 실행력을 높이는 동시에 기존 점포의 영업 전략을 재정비하려는 인사다. 신규 출점과 점포별 경쟁력 강화가 맞물린 상황에서 각 조직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사업 추진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대그린푸드 이헌상 부사장과 현대지에프홀딩스 윤영식 부사장도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사장은 현대백화점 주요 점포에서 근무한 뒤 현대그린푸드 상품본부장을 맡아 영업 현장과 상품 운영 경험을 쌓았다. 이번 승진으로 영업총괄과 상품본부장, 유통외식본부장을 겸임하게 돼 사업 간 연계를 강화하고 기존 사업의 경쟁력과 신규 성장 분야의 성과를 함께 높여야 한다.
윤 사장은 1994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미래전략팀장과 경영전략실장을 거쳤고, 2023년부터 현대지에프홀딩스 부사장을 맡았다. 그룹의 기획·전략 업무를 경험한 만큼 장 부회장과 함께 지주사 중심의 계열사 관리와 경영관리 체계를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 안정 속 쇄신 택한 정지선, 성과 창출이 관건
정 회장은 대규모 외부 영입보다 내부에서 경험과 성과를 쌓은 인재를 핵심 자리에 배치하는 인사 기조를 이어왔다. 다만 대표이사 교체 폭과 승진 규모는 경영환경과 사업 과제에 따라 달라졌다.
2022년 정기 인사에서는 계열사 대표를 모두 유임하며 조직 안정에 무게를 뒀다. 반면 2023년에는 현대백화점 대표에 정지영 당시 부사장, 현대홈쇼핑 대표에 한광영 당시 부사장을 내정하는 등 주요 계열사 수장을 교체하며 내부 인재를 전면에 배치했다. 2025년에는 현대백화점·현대홈쇼핑·현대그린푸드·한섬 등 주력 계열사 경영진을 대부분 유임하고 일부 계열사 중심으로 대표를 교체해 안정과 쇄신을 병행했다.
이런 흐름에서 2027년 인사는 경영진을 대거 교체하기보다 기존 리더십의 위상을 높이고 사업별 책임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주사에는 그룹 경영관리 경험을, 식품사업에는 장기간 축적한 경영 경험을, 홈쇼핑·패션·면세점에는 각 사업의 현장과 상품을 이해하는 전문성을 활용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