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총선을 하루 앞두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집권에 빨간불이 켜졌다. 집권 연립정부가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잇따르자 네타냐후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추가적인 공개 지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정권을 잃으면 부패 혐의 재판에 따른 형사 처벌 가능성이 커진다. 동시에 이란에 대한 추가 군사행동을 주장해 온 만큼, 그의 퇴진으로 이란 전쟁의 양태가 바뀔 수도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로이터=연합뉴스
25일(현지시각) 미국 악시오스와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총선은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생존뿐 아니라 이란전쟁과 가자지구 문제를 둘러싼 중동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올해 통산 19년째 집권하고 있다.
◆ 집권 연합 50석 전망 : 패배하면 '부패 혐의 재판'이 기다린다
이스라엘 주요 방송사 3곳이 지난 2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집권 연합은 전체 120석 가운데 50석을 확보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보다 17석 적고, 과반인 61석에도 11석 부족하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리쿠드당 역시 현재 32석에서 20석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을 지낸 가디 아이젠코트 야샤르당 대표가 이끄는 야권 진영은 52~56석, 아랍계 정당들은 14~16석을 확보할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야권도 독자적 과반 확보가 어려워 정권교체를 장담하기는 이르다. 아이젠코트 대표가 아랍계 정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배제하고 있어서 이스라엘 총선 이후 정치적 교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번 선거를 통해 네타냐후 총리가 정권을 잃으면 사법적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현재 뇌물수수·사기·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유죄가 확정되면 형량에 따라 수감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선거 패배가 곧바로 수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2024년 11월 가자지구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해 두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졌다는 의혹과 관련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소송도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5일 분석기사를 통해 "이번 이스라엘 총선에서 어느 진영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수주에서 수개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연정 협상이 결렬돼 재선거를 치르게 되면 네타냐후 총리가 과도정부를 이끌며 권력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25일(현지시각) 설치된 선거 광고판 속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 이스라엘·미국-이란 전쟁에 회의적 여론 커진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에 대한 군사적 성과를 재집권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스라엘 유권자 사이에는 회의적 시선이 우세하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가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7%는 이란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고, 43%는 승패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스라엘이 승리했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15%에 그쳤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 네타냐후 총리의 재선을 공개 지지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가 최근 사흘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통화하며 추가적인 공개 지지를 요청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측 소식통은 백악관이 이를 '절박함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리쿠드당은 관련 보도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선과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이란에 대한 새로운 대규모 군사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추가 공격을 원하지만 미국은 가자지구 평화구상과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관계 정상화 등 외교적 성과도 추구하고 있다.
가디 아이젠코트 야샤르당 대표. ⓒ UPI=연합뉴스
◆ 유력 경쟁자 아이젠코트, '대이란 강경노선'
네타냐후 총리의 유력한 경쟁자인 가디 아이젠코트 중도 야샤르당 대표는 정부의 전쟁 수행 방식을 비판하면서도 이란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1일 “아이젠코트 대표와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 등 주요 야권 지도자들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군사적 압박에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젠코트 대표는 이란의 핵개발 능력 제거와 헤즈볼라 지원 차단을 주장하고 있다. 베네트 전 총리 역시 이란의 핵무기 확보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자지구 정책에서도 두 사람 모두 하마스의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에 부정적이다. 다만 아이젠코트 대표는 군사적 성과를 외교적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제임스 제프리 석좌연구원은 “이스라엘의 정권교체에 따라 이란과 가자지구 등에 대한 정책이 달라질 수 있지만,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강화된 이스라엘의 안보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가 패배하더라도 이스라엘이 당장 이란전쟁을 끝내려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협의해 군사작전의 강도와 시기를 조정하면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여지는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