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건 가운데 983건. 국내 8대 은행지주 이사회가 지난해 처리한 총 안건 가운데 원안 그대로 통과된 안건의 수다. 수정가결은 9건, 보류는 1건에 그쳤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기능을 놓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에게 경영진이 제공하는 자료에만 의존하지 말고 추가 자료를 요구하거나 외부 전문가를 활용해 주요 안건을 면밀히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특히 금융지주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승계 절차가 본격화한 만큼 차기 CEO 후보 선정과 검증 과정의 투명성도 높여 달라고 당부했다. 금융당국은 이사회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CEO 승계절차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는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은 28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이 원장과 8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례 조찬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현재 마련 중인 지배구조 개선방안에서는 사외이사가 권한과 여건을 갖추고 경영진에 대한 견제기능을 충실히 수행토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다만 제도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사회가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려면 사외이사들의 전문성과 책임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 원장은 지난해 은행지주 이사회가 의결한 안건 가운데 원안 그대로 가결된 비율이 99%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도 이사회 차원의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며 "경영진이 제공하는 자료에만 의존하지 마시고 적극적 자료요청, 외부전문가 활용 등을 통해 안건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등 이사의 충실의무를 다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업다각화와 경영진 보수, 성과평가(KPI) 등 주요 경영현안에서도 회사와 주주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진행 중인 자회사 CEO 인선에 대해서도 "지배구조 개선방안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여 자회사 CEO 승계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다 강화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사회가 직접 챙겨야 할 다른 현안으로 IT 보안과 내부통제, 사회적 책임도 제시했다.
특히 최근 금융권에서 해킹 사고가 잇따르는 상황을 언급하며 IT 보안에 대한 이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지난 14일 기준 은행과 저축은행, 상호금융, 여신전문금융업 등 16개 금융회사에서 침해사고가 발생했다.
이 원장은 인공지능(AI)이 해킹에 활용되면서 동시다발적 공격이 일상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회사가 IT 자산을 철저히 관리하고 취약점을 스스로 찾아 제거하는 자율 방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IT보안을 부수적 업무로 간주하여 규제 요구 사항만을 형식적으로 준수하거나, IT보안 투자를 '비용'으로 인식하여 충분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행태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서는 규모보다 실질적 성과를 강조했다.
금감원은 지방자치단체 금고 계약 입찰을 위한 행사 협찬금이나 고객 유치 목적의 이벤트 비용 등을 사회공헌 실적으로 포함하는 '소셜워싱' 문제를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이제는 얼마나 많이 지원했는가를 넘어, 사회공헌 활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냈는가를 고민할 시점"이라며 "이사회가 중심이 돼 중장기 사회공헌 계획을 마련하고 성과를 점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은행 점포 축소와 관련해서도 경영 효율성뿐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접근성을 고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 점포 수는 5517개로 2022년 말보다 314개 줄었다. 이 원장은 고령층과 금융취약계층이 금융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조찬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은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그룹의 지속가능한 경영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 또한 금융당국과 정례적 소통도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