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차기 정부를 결정할 투표가 진행된 27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도시 헤브론에서는 주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손에 든 팻말에는 "집단처벌 반대, 봉쇄 반대, 강제이주 반대"가 적혀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섬광탄(stun grenade)을 발사했다.
한쪽에서는 누가 나라를 이끌지를 물었다. 다른 쪽에서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물었다.
10월27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군사작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주민들의 강제 이주에 항의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시위 진압용 수류탄을 피해 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27일 군사작전을 계속하기 위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번 작전은 지난 23일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군인 2명이 숨진 뒤 시작됐다. 유엔은 26일 기준으로 주민 3천 명 이상이 집을 떠나야 했다고 밝혔다.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는 병원으로 가는 길마저 쉽지 않았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한 누라 나사르는 도로 봉쇄 때문에 진료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인간 아닌가요?"
이스라엘 선거가 치러지는 날, 그가 요구한 것은 의사를 만나러 갈 수 있는 일상이었다.
10월 27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군사작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주민들의 강제이주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집단처벌 반대, 봉쇄 반대, 강제이주 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헤브론은 가자지구가 아니라 서안지구 남부에 있는 도시다. 팔레스타인 영토는 크게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나뉜다. 서안지구는 요르단강 서쪽에, 가자지구는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다. 두 지역은 이스라엘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두 지역을 자유롭게 오가기 어렵다. 서안지구 안에서도 봉쇄와 검문이 일상을 가로막는다. 이동 제한은 출근과 병원 방문을 막거나 지연시키고, 노동자의 출근과 상품 운송에도 차질을 빚는다. 길이 닫히면 주민들의 생계도 함께 흔들리는 것이다.
가자지구에서도 휴전이 안전한 일상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유엔 독립조사위원회는 2025년 10월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행위가 이어졌다고 판단했다고 AP가 26일 보도했다. 조사위는 고문과 성폭력 등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도 지적했고,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는 일도 더 어려워졌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자금 부족으로 가자지구의 월간 식량지원 대상을 160만 명에서 110만 명으로 줄였다고 19일 밝혔다. 서안지구에서는 앞서 9월 지원 대상이 40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줄었다. 두 지역에서 모두 70만 명이 지원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지원을 계속 받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식량 배급량도 줄었다. WFP는 향후 6개월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필수 지원을 유지하는 데 4억5천만 달러(약 6천억 원)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10월23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이스라엘 군인 한 명이 콘크리트 방호벽에 붙은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후보 선거 포스터 뒤에 서 있다. 벤그비르는 '유대인의 힘'이라는 뜻의 오츠마 예후디트당 대표다. 포스터에는 히브리어로 "비비가 강해지려면 벤그비르가 필요하다"라고 적혀 있다. '비비'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별명이다. ⓒUPI/연합뉴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선거는 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로이터의 10월22일 분석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주요 경쟁자인 가디 아이젠코트는 모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에 반대한다. 하마스가 무장해제하지 않으면 가자지구에서 전투를 재개할 수 있다는 데도 두 사람의 입장은 같다.
차이는 정착촌 정책에 있다. 아이젠코트 역시 정착촌을 원칙적으로 지지하지만, 이스라엘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허가받지 않은 정착촌에 반대하며, 설치가 금지된 지역의 정착촌 전초기지를 철거하고 정착민의 팔레스타인 주민 공격을 막겠다고 밝혔다.
10월28일(현지시각)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겸 리쿠드당 대표가 총선 출구조사 발표 후 당 본부에서 연설하며 손짓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기다리는 변화는 일상적이고 절박하다. 폭격과 대피, 강제이주로 이어지는 거대한 전쟁 안에서 물을 받으려고 줄을 서는 일도, 화장실을 기다리는 일도 일상의 전쟁이 됐다. 사생활이 사라진 공간에서 감시 드론의 소리를 들으며 천막 속에서 밤을 견디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집을 떠나라는 명령 없이 잠들고, 봉쇄된 길 앞에서 돌아서지 않고,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하루다. 투표가 끝나고 휴전이 선언돼도 그런 하루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들의 일상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