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생활비 상승 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탈리아에서도 집회가 이어졌다. 세르비아에서는 학생 주도 반정부 시위가 집권 세력의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인도의 '바퀴벌레당'도 기성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앞서 한국과 일본에서는 '응원봉'과 '펜라이트'가 거리에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팬클럽이 쓰는 응원봉을 펜라이트라 부른다. 단순한 구호와 행진을 넘어 거리 시위에는 반짝이는 빛이 더해졌다.
2024년 12월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시민들은 K-팝 음악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며 퇴진을 요구했다. 2026년 봄 일본에서도 전쟁과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펜라이트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한국과 일본의 시위문화는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새로운 시위 방식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할 수 있을까. 허프포스트코리아 조장우 기자와 허프포스트재팬 도미타 스미레코(冨田すみれ子) 기자가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양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운동을 살펴봤다.
허프포스트코리아와 허프포스트재팬 기자가 양국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과 시각을 나누는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이러한 대화를 '한일 허프 필담'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2025년 3월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긴급행동' 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왼쪽)/ 일본 시민들이 2026년 3월19일 밤 도쿄도 지요다구 의원회관 주변에서 ‘NO WAR’ 팻말과 팬라이트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허프포스트재팬
한국의 응원봉, 일본에서는 '반전의 빛'으로
조장우 : 일본에서 올해 3월 펜라이트 시위가 열리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기존 시위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도미타 스미레코 : 지난 3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일본이 전쟁에 가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습니다. 당시 1만~2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펜라이트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민들은 '전쟁 반대', '과거에서 배우자' 등의 피켓을 들고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했습니다. 젊은 참가자들은 "평화롭지 않으면 좋아하는 사람을 응원할 수도 없다"며 반전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혼자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20~30대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펜라이트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SNS에서 시위 장면을 보고 '이 정도라면 나도 참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어두운 국회 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들어 올린 펜라이트는 마치 은하수 같았습니다.
도미타 : 한국에서 시작된 응원봉 시위가 일본으로 확산된 것을 한국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조 :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한국의 응원봉 시위가 다른 나라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일본이 전반적으로 보수적 정치 성향이 강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펜라이트 시위가 열렸다는 사실에 놀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본 정치의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들었습니다.
2024년 12월8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및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시민들은 왜 거리로 나서는가
도미타 : 2024년 12월 한국의 응원봉 시위는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K-팝과 응원봉이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확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조 : 당시 시민들은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K-팝 음악에 맞춰 노래하며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요구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전부터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문화공연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K-팝 팬덤 문화가 시위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는 점이 특징적이었습니다.
익숙한 음악과 응원봉은 정치 집회에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의 심리적 문턱을 낮췄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응원봉 때문이 아닙니다. 비상계엄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분노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도미타 : 저도 지난해 3월 부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요구하는 시위를 목격했습니다. 젊은이들이 K-팝 음악에 맞춰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시위문화가 어떻게 형성됐습니까?
조 : 한국 현대사에는 시민들의 거리 시위가 실제 정치적 변화로 이어진 경험이 축적돼 있습니다.
1960년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도입의 계기가 됐습니다. 2016~2017년 촛불집회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집회가 양극화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위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단이라는 인식은 비교적 널리 공유되고 있습니다.
1987년 6·10 민주화 시위. ⓒ 연합뉴스
일본의 학생운동은 왜 쇠퇴했을까
조 :일본에서도 1960년 안보투쟁과 1968년 전공투 운동 등 대규모 저항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약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미타 :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당시 학생운동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일본 사회에 남아 있는 시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조사에서 젊은 응답자의 46.8%는 집회나 시위 등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얼굴이나 이름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운동이 과격하다는 이미지 등이 참여를 꺼리는 이유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에서는 사회를 바꾸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시위보다 자원봉사나 학생단체 활동을 선택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는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학생단체 SEALDs 등은 힙합과 랩 음악, SNS를 활용해 기존 학생운동과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냈습니다.
조 :최근 일본에서는 펜라이트뿐 아니라 '피크닉 시위', '독서 시위' 등도 등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도미타 : 그렇습니다. 피크닉이나 독서 시위는 구호를 외치지 않고 피켓을 든 채 조용히 항의하는 방식입니다. 음악을 활용하는 사운드 시위나 소규모 스탠딩 시위도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목소리를 높이는 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펜라이트 시위에서도 반드시 구호를 외칠 필요는 없었습니다. 조용히 펜라이트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펜라이트를 들고 '하나의 빛'이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의사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일본 의회 앞에서 사람들이 펜라이트를 들고 항의했다. ⓒ허프포스트재팬/도미타 스미레코 기자
거리의 열기는 투표소로 이어질까
도미타 :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의 낮은 투표율이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 왔습니다. 한국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 : 한국에서는 선거를 통해 실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비교적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이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특히 대통령선거는 향후 5년간 국정 운영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다만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의 투표율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투표율만으로 정치 참여 문화를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공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응원봉과 일본의 펜라이트는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는 도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민주주의가 선거를 넘어 일상에 자리잡는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