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낸드플래시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중복상장’ 논란을 걷어내고 주가 반등의 실마리를 찾았다.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성을 둘러싼 의구심과 메모리 업황 정점에 관한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게 했던 악재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 추진이라는 우호적 재료도 나왔지만 주가가 다시 상승 궤도에 오르려면 단순히 악재를 덜어내는 것을 넘어 시장의 눈높이를 뛰어넘을 새로운 근거가 필요하다.
SK하이닉스 앞에는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두 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추격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차세대 HBM4 생산 확대를 통해 기술 주도권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여기에 역대급 실적을 바탕으로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는 주주환원 정책까지 내놓는다면 기업가치 재평가의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업계와 주식시장의 시선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SK하이닉스 3분기 실적발표로 향하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만큼 당장의 숫자보다는 그 이후의 성장 경로와 주주환원 방향이 주가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28일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전략과 주주환원 규모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SK하이닉스
27일 코스피 시장에서 오후 2시40분 기준으로 SK하이닉스 주식은 134만42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날 종가와 비교해 5.25%(6만7천 원) 뛴 수치다.
이날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장중 대폭 오른 이유로는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이 상장 절차를 공식적으로 밟기 위해 기업공개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 꼽힌다. 이미 풍부한 현금을 들고 있는 앤트로픽이 AI 투자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반도체 업종까지 투자심리가 개선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앤트로픽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IPO를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기업가치 최대 2조 달러(약 2700조 원)를 인정받아 1천억 달러(약 133조 원)를 조달하려는 앤트로픽은 1130억 달러(약 150조 원) 규모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점 등을 근거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SK하이닉스 주식은 솔리다임 중복상장 우려를 지워낸 지난주 말부터 반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4개월 전 300만 원까지 올랐던 SK하이닉스 주가는 AI 투자 거품론, 메모리 업황 정점 우려 등에 50% 이상 하락했고 20일에는 종가 기준으로 119만 원까지 낮아졌다.
최근 SK하이닉스 주가 하락의 배경에는 솔리다임 기업공개(IPO) 추진에 따른 중복상장 우려도 존재했다. 9월 말부터 로이터통신 등 국내외 언론을 통해 솔리다임이 상장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중복상장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우려로 SK하이닉스 주가가 더욱 하락한 것이다.
다만 23일 SK하이닉스는 기존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장 초반 솔리다임 IPO 검토를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당일 SK하이닉스 주가는 종가 기준으로 전날보다 3.27%(4만 원) 오른 126만3천 원에 거래를 마쳤다.
26일에도 1.02%(1만3천 원) 소폭 상승한 129만 원을 기록했다. 장중에는 130만 원 선을 넘기도 했는데 이는 130만4천 원으로 장을 마감했던 19일 이후 일주일 만이다.
앞서 23일과 26일 삼성전자 주가가 종가 기준으로 각각 0.47%(1천 원), 0.93%(2천 원) 내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SK하이닉스 주가의 소폭 반등은 솔리다임 중복상장이라는 우려가 걷어진 데 따른 영향이라고 풀이된다.
물론 SK하이닉스가 주식시장에서 판단되는 기업가치를 다시 가파르게 높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는 평가가 많다. 솔리다임 중복상장 이슈 해소는 주가 하락 압력을 덜어낸 측면이 강하고 반도체 수요를 결정짓는 AI 시장을 둘러싼 리스크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이 이날 400쪽에 이르는 증권신고서 가운데 4분의 1을 ‘위험 요인’ 설명에 할애한 것은 AI 시장의 성장과 관련한 리스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앤트로픽은 증권신고서에서 AI의 오용·무기화와 인간 통제를 벗어난 자율적 행동에 따른 재앙적 위험,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 불확실성과 TSMC 의존, 전력·용수 부족, 미국 정부와 갈등 등을 주요 위험 요소로 꼽았다. AI 시장의 리스크는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산업 리스크로 직결되는 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3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기업가치 상승의 추가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하이닉스는 28일 콘퍼런스콜을 열고 3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3분기 연결기준 매출 98조 원, 영업이익 77조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는 수준이고 영업이익률도 78%에 육박한다.
다만 SK하이닉스의 실적 수치보다는 미래를 위한 경영전략과 주주환원 정책을 향한 관심이 훨씬 큰 상황이다.
경영 측면에서는 HBM4 생산능력 확대에 관한 구체적 계획이 나오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해 나가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기존의 핵심 경쟁력을 어떻게 지켜낼지에 이목이 쏠린 것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HBM4 매출이 이전 분기보다 3배 이상 커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올해 하반기에는 자체 HBM 매출 가운데 HBM4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HBM 시장에서 전체 D램 시장 점유율만큼의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도 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2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점유율 39.4%로 1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가 HBM4 생산능력을 얼마나 빠르게 확대하느냐는 삼성전자의 추격 속에서도 HBM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고 실적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동시에 주가 반등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전날 주간 보고서를 통해 “SK하이닉스가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고 메모리 시장 호황에 따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더 중요한 문제는 HBM4인데 SK하이닉스가 HBM4 생산을 확대해 삼성전자의 추격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지다”고 분석했다.
3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발표하겠다는 세부 주주환원 계획도 SK하이닉스의 주가 반등에 속도를 높일 핵심 재료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가 역대급 실적을 써오면서 풍부한 현금을 보유한 만큼 투심을 달랠 만한 주주환원 정책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8월 40조 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및 소각 결정을 내리면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구체적 추가 환원 규모와 방식을 3분기 실적발표 시점에 안내하겠다고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2025~2027년 3개년 주주환원 정책에 따라 누적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이상을 환원하겠다는 방침을 두고 있다. FCF는 영업현금흐름에서 자본적지출(CAPEX)을 뺀 수치로 기업이 투자를 집행하고 남는 현금을 뜻한다. 증권업계의 전망을 종합하면 SK하이닉스의 올해 FCF는 2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이날 반도체 산업 분석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이익 창출력이 확대됐음에도 주가는 고점 대비 크게 하락하며 이례적 저평가 국면에 진입해 있다”며 “사상 최대 실적과 역사적 저평가가 공존하는 현 시점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주주환원은 낮아진 기업가치를 해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